엄마는 밀수꾼이었다. 배짱좋은 여장부였다. 이상한 아저씨가 집에 찾아온 날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엄마는 이후 밀수꾼을 그만 두었다. 아니 이후에는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세상과 싸워야 했다.배 몇 척으로 운수업을 했던 아버지는 배가 불에 타서 사업이 망하자 술로만 세월을 보내다 돌아가셨다. 나는 소설가나 국어교사라는 꿈을 접고 그냥 평범한 여자로 살기로 했다. 아버지 대신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험한 세월을 보낸 엄마. 그런 인생을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남편을 평생 백수로 만든 엄마의 생활력을 닮는 것도 무서웠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듯 했다. 여상을 졸업하고 한 기업의 전산실에 취직했다. 비로소 정상적인 삶의 궤도를 찾은 듯 했다. 남편을 만난 것은 직장에서였다. 심성이 바르고 의지가 곧았다.
첫딸을 낳고 살던 그 때가 내 일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때였을 것이다. 인생의 모범답안처럼 지극히 상식적이고 건강하게 살았다. 둘쨋딸을 낳고 남편이 사표를 내면서 운명은 바뀌기 시작했다. 친구와 동업으로 사업을 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돌아가는 가 싶더니 회사는 3년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몇 번 다시 사업을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벌인 남편의 사업이 거래 기업의 부도로 망했을 때 타격이 컸다. 엄청난 빚까지 지며 벌인 일이었다. 앞이 아득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살려야했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밤에는 전단 돌리는 일을 했다. 휴일이면 예식장 식당에 다녔다. 일요일 예식장 식당에서 골병이 든 몸은 월요일에 약을 사 먹으면 목요일쯤에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남편은 술로 세월만 보내고 나는 진통제에 반쯤은 정신이 나간 채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우리는 지상에서 추방당했다. 지하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사하던 날 남편은 속이 몹시 아파 병원에 가고 혼자 이사를 했다. 남편은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있었다. 대장암 말기였다. 이후 2년 가까이 남편과 나는 병원에서 지냈다.
나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하루라도 놀면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될 상황이었다. 병원에서 밤을 새고 새벽에 집으로 가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서 출근을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제일 편했다. 죽음으로 다가가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고, 이자를 독촉하는 은행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니까. 퇴근을 하고 병원으로 가는 길은 천길 물속으로 걸어가는 듯 무서웠다. 넋이 나간 채 병원으로 집으로 뛰어다니고 남편은 점점 죽음의 문으로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직장에 나갈 수 없었다. 24시간 병원에서 생활했다. 나도 죽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죽고 싶었다. 남편은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마지막 사투를 벌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하얀 손이 마치 태극무를 추듯 허공을 젓다가 맥없이 침대 위로 떨구어졌다.
나이 마흔에 과부가 되었다.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듯했지만 밖은 끝없는 사막이었다. IMF로 온 사회가 수렁에 빠진 때였다. 양말행상을 했다. 경기가 얼어붙어 있어 공치는 날이 많았다. 집 근처 해물탕집에 주방보조로 들어갔다. 식당일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한 달만 해보자. 한 달을 이틀 남겨놓고 119 구급차에 실렸다. 별 이상은 없는데 몸이 많이 약해져 있다고 했다. 남은 건 몸 하난데 이러면 어떡하나.
뒷산에 올라갔다. 아파트단지가 성냥갑처럼 작게 보였다. 사람 사는 세상이 별것도 아닌 것 같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저수지를 찾았다. 둑에 앉아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고기떼가 지나가는지 작은 물살이 일었다. 저 차가운 물속에서도 고기들은 생명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 참으로 숨가쁘게 살았지. 다 부질없는 것을. 저 흐르는 물처럼 살면 되는 것을.
아는 사람의 소개로 작은 회사 경리로 취직을 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회사에 다닌 지 이제 5년. 열심히 살았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었다. 얼마 전 지상으로 올라왔다.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소리쳤다. "엄마! 방에서 하늘이 보여요."
달팽이가족. 내가 붙인 우리 가족의 별칭이다. 우리는 달팽이 껍질 속에서 산다. 웬만한 원룸보다도 작은 12평 임대아파트에서 두 딸과 내가 움츠리고 산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웃음소리가 창문 밖으로 넘친다. "얘들아! 모르는 사람이 밖에서 우리 웃는 거 들으면 결손가정인줄 꿈에도 모를꺼다. 크크크"
어젯밤에는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요즘 많이 쇠약해지셨다. 눈물이 떨어져 중간중간 잉크가 번진 편지를 받고 엄마가 예전의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의 인생처럼 나도 얼마나 더 비탈진 삶의 언덕을 올라야 할 지 모른다. 한 계단 한 계단이 고통스럽더라도 비틀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물이 흐르듯 흘러갈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