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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아버지의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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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아버지의 된장찌개

입력
2004.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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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늦은 시간 전화벨이 울렸다. 궁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받자 "너 이놈! 네가 저절로 큰 줄 아니?"하는 호통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작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도 자주 찾아뵙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몸도 안 좋은 노인네가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손자도 보고 싶을 테고. 자주 찾아가 뵈어라" 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아버지를 찾아뵌 지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칠 뒤 휴일을 맞아 딸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좋아서 할아버지 품에 안기는 딸아이와 오랜만에 보는 손자가 예뻐서 번쩍 안아드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 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손자와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으신 아버지와는 일상적인 이야기만 간간이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점심 식사 후 잠깐 누운 것이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보니 시간도 좀 흘렀고 또 한 주일을 시작하려면 준비할 것도 있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주방 가스레인지 앞에 분주히 움직이는 아버지가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아버지 뭐 하세요?"라고 묻자 대뜸 "식사하고 가라" 하시는 것이다. "내가 된장찌개 끓였다. 멸치도 갈아 넣고 생 땅콩 가루도 넣어 구수할 게다.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찌개 잘 끓인다. 한 번 맛 좀 볼래?" 하시는 것이 아닌가. 잠시 안보여 운동 삼아 자전거 타러 가신 줄 알았는데 된장찌개를 끓이고 계셨던 것이다. 정말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평상시 부엌일을 거의 안 하시던 분이 아들이 뭐가 예쁘다고 이것저것 갖은 재료를 넣은 된장찌개를 손수 끓이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하며 두부와 함께 국물을 한 수저 떠서 맛을 보니 구수하고 담백하였다. 그렇지만 가슴 저 밑에서 올라오는 뭉클하는 마음에 맛있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동안 나는 아버지에 대해 마음의 벽을 허물 생각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먼저 그 벽을 허물려고 하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자식들의 양말이며 겨울 스웨터를 손수 뜨개질하여 만들어 주시는 자상한 분이었다. 하지만 남의 의견은 잘 들으려 하지 않는 성품 때문인지 벌이는 사업마다 계속 실패했고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고 시간이 갈수록 반항심이 커져 간 것이다. 그런 나의 불만을 아셨는지 언젠가 술을 많이 드신 날 "내가 나 혼자 잘살려고 그런 줄 아니. 나쁜 놈! 애비 너무 미워하지 마라" 하시며 서운한 속내를 비치셨다.

이제는 나도 결혼하여 자식 낳고 살다 보니 아버지의 그 말씀을 조금은 이해한다 하면서도 아버지께 따뜻한 말 한 마디 한 번 건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날 아버지의 애틋한 정이 담긴 된장찌개 맛은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할 것이다. /정주현·서울 노원구 공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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