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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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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타오르는 불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시인 황지우가 지은 '초로(草露)와 같이'의 한 구절입니다. 상상력을 곤두세우게 하는 강렬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 시를 대했을 때, 엉뚱하게도 불이 아닌 물을 떠올렸습니다. 파란 바닷물 말입니다.고향이 동해 바닷가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걸음마를 떼면서 곧바로 자맥질을 배웠습니다. 폼이 엉성한 '촌놈 수영'이지만 풀이 아닌 바다에서 익혀서인지 실전에 꽤 도움이 됩니다. 속도를 다투는 경영(競泳)에서는 꼴찌겠죠. 그러나 물에서 오래 버티는 종목이 있다면 아직 자신 있습니다.

고향에도 팔라우처럼 물 속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큰 바위가 두르고 있어 파도가 높지 않았고 수심도 적당했습니다. 또 작살로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많아 마을 개구쟁이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였습니다. 어디냐고요? 안타깝게도 이제는 말씀드려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언젠가 이 지역에 항구를 건설한다며 이 '천혜의 포인트'를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어 버렸습니다.

물속에 자주 들어가면 묘한 것에 이끌립니다. 그것은 고요함입니다. 뽀글뽀글 자신이 내뱉는 공기방울 소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한동안 물 속에서 고요를 느끼다가 고개를 수면 위로 내놓습니다. 요란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딴 세상입니다. 숨을 고르고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고요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지우 시인이 생각한 불 속의 고요함은 아마 물 속의 그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를 보며 바다를 떠올린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불 속의 고요는 체험하기 힘든 반면, 물 속의 고요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 거죠.

오랜만에 팔라우의 바다에서 고요의 세계를 만끽했습니다. 웬만큼 깊어도 바닥까지 훤하게 보이는 맑은 물은 고요의 깊이를 더해줬습니다. 취재 여행 내내 비가 내렸지만 물 속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일정을 물 속에서 보냈습니다.

이제 물과 친숙해지는 계절이 옵니다. 물 바깥이나 물 위에서만 첨벙댈 것이 아니라 올해에는 한번 물 속 여행을 감행해 보시죠. 겁이 난다고요? 용기가 없다면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자기 최면에 걸릴 정도로 늘 이런 생각을 하면 도전해볼 마음이 생길 겁니다. '저 파란 물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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