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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12>폴 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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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12>폴 포트

입력
200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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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5월19일 캄보디아 혁명가 폴 포트가 콤퐁 톰에서 태어났다. 1998년 몰(沒). 폴 포트는 혁명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역사상 최악의 학살극 가운데 하나를 연출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른바 캄푸체아민주공화국의 총리로 재임하며 크메르루주 정권을 이끌던 1976년부터 1979년 사이에 캄보디아에서는 최소한 80만 명(폴 포트의 주장)에서 최대 3백만 명(베트남의 지원 아래 폴 포트 정권을 무너뜨린 헹 삼린 정권의 주장)의 캄보디아인이 조직적으로 살해됐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 기간 동안 1백4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미국적인 것, 모든 도시적인 것은 말끔히 쓸어내야 할 쓰레기였다.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이 1960년대 말 이래 캄보디아에 대대적으로 폭격을 감행하고 1970년 론 놀 장군의 쿠데타와 그에 이은 우익 군부독재 정권을 지원한 사실을 들어, 크메르루주의 범죄 행위를 상대화하려는 수정주의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크메르루주가 벌인 제노사이드는 그 규모와 잔학성에서 히틀러 정권이 저지른 짓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1979년 베트남군이 헹 삼린을 지원해 크메르루주 정권을 몰아낸 것도, 근본적으로 친중국 노선의 폴 포트 정권과 친소련 노선의 베트남 사이에 누적된 갈등에서 비롯되기는 했지만, 겉으로는 크메르루주 정권의 학살극을 끝장낸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다.

권좌에서 밀려나 다시 게릴라 지도자가 된 폴 포트가 '철천지원수' 미국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은 역사의 더러운 아이러니다. 헹 삼린 정권이 베트남의 뜻에 따라 친소련 노선을 취하자, 중국과 손을 잡은 미국은 새 정권이 유엔에서 캄보디아를 대표하지 못하도록 막는 한편 직간접적으로 폴 포트의 게릴라 활동을 지원했다. 결국 미국 정부의 손에도 킬링필드의 피가 묻어 있는 셈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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