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간디가 어느 날 친구와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게 됐다. 간디는 조금 늦게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가 플랫폼을 막 출발하려고 했다. 간디는 급히 기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서두르는 바람에 실수로 그만 신발 한 쪽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미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주울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포기하고 기차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간디는 신고 있던 나머지 신발 한 쪽을 마저 벗어 들더니 금방 떨어뜨렸던 신발을 향해 힘껏 던지는 것이었다. 친구가 의아해서 그 까닭을 물었다. 간디는 행복한 미소를 띤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누군가 저 신발을 줍는다면, 두 쪽이 다 있어야 신을 수 있을 게 아닌가?"이런 경우 보통은 남아 있는 신발에 관심의 초점을 두게 된다. 그리하여 그 신발이 사용가치를 잃게 된 것에 아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간디는 떨어뜨린 신발에 관심의 초점을 둔 것이다. 그 신발이 사용가치를 회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남아 있는 신발을 마저 벗어 던진 것이다. 한 사건 앞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 문제를 보는가에 따라 결과는 아주 달라진다. 씁쓸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성경은 예수가 이런 말씀을 하였다고 전한다.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을 앞에 두고서 거기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어디에 초점을 맞춰 보느냐에 따라, 행복한 눈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는 무언가를 보라고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란다. 간디의 이야기에서 행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사회에 이런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물론 그 행복은 사회 전체에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그런 행복이다.
/노희담 신명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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