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체들이 비축한 현금규모가 6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돈을 벌면 현금으로 쌓아둔 채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1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기업들의 현금보유와 부채상환 선호경향에 따라 투자는 사실상 제자리에 머물러 경제성장 잠재력은 갈수록 마모되고 있다.
투자 대신 현금, 부채상환
지난해 국내 제조업 매출액은 평균 6.1% 늘었다. 2002년(8.3%)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크게 나쁜 수치는 아니다.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도 4.7%로 전년도에 이어 29년만의 최고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설비투자는 사실상 정체상태. 설비투자 수준을 나타내는 자기자본대비 고정자산 비율은 132.2%로 전년(145.1%)보다 크게 낮아졌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261%)의 절반수준이다. 그렇다면 이익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첫째 현금이다. 총자산중 현금(예금포함) 비중은 9.7%에 달했다. 99년 현금비율은 5.3%였지만 2001년 6.0%, 2002년 8.1% 등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마땅히 투자할 곳도 없는데다, 경영권불안 때문에 번 돈을 계속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현금비축 규모는 약 60조원으로 추정된다.
둘째는 부채상환이다. 지난해 제조업 부채비율은 자기자본 대비 123.4%로 1966년 이후 37년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미국(154%) 일본(156%)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개선된 것은 '장부상 재무구조'일 뿐, 투자포기의 결과이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성장 잠재력은 오히려 뒷걸음질친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
전체기업중 부채비율이 100%에도 못미치는 우량기업 비중은 2002년 37.1%에서 지난해 39.4%로 높아졌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400%를 넘는 한계기업비중 역시 15.1%에서 16.4%로 상승했다. 자본잠식기업 비중도 올라갔다(4.1→4.5%). 좋아진 기업도 많아졌지만, 어려운 기업은 더 많아진 것이다.
수익성도 마찬가지다. 매출액 경상이익률이 20%를 넘는 기업비중은 4.3%에서 4.5%로 높아졌다. 그러나 적자업체 비중도 18.8%에서 21.2%로 함께 높아졌다. 무차입기업이 증가(4.1→4.9%)했지만, 영업이익으로 은행빚도 못갚는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업체 비중 또한 상승(23.5%→26.2%)했다. '제조업' 평균치는 확실히 개선됐지만, 소수우량업체들의 잔치일 뿐 대다수 '제조업체'들은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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