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포로를 학대 또는 고문한 미군이 희희낙락하며 사진까지 찍은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언뜻 잔혹행위에 가담한 병사가 장난처럼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 양심고백 하듯이 언론에 흘린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미군 자체조사에서 많은 양의 사진이 나온 사실은 사진 찍기도 고문 학대와 마찬가지로 예외적 일탈 행위로 볼 수 없게 했다.언론의 당초 추정도 변태적 성범죄처럼 병사들이 자신의 지배력을 과시하는 데 도취, 기념사진 찍듯이 했으리란 것이다. 그러나 포로 심문이 군 정보기관과 CIA 주도로 이뤄진 사실 앞에 이런 단순한 추정은 설득력을 잃었다. 노련한 정보기관이 허술하게 사진 찍기와 유출을 허용할 리 없는 것이다.
고문과 전쟁범죄 전문가들이 답을 내놓았다. 미군의 온갖 고문과 학대 수법은 CIA의 교본을 따른 것이며, 사진 찍기는 인간적 품위와 자존심, 저항의지 등을 무력화하는 고문 효과를 높이는 수단이라는 얘기다. 성과 신체노출에 관한 금기의식이 유별난 이라크 포로에게 성고문을 자행하면서 사진까지 찍어 극단적 자포자기에 빠뜨렸으리란 분석이다.
이런 분석은 주변적 의문에 대한 해답도 담고 있다. 앳된 여군 헌병이 성적학대를 받는 포로를 조롱한 것도 여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포로들에게 한층 큰 수치심과 좌절을 안기려는 계산된 역할이다. 전문적 견지에서는 이 병사가 모범 학생이었다는 따위 얘기는 사태를 이해하기 힘든 일탈행위로 비치게 하려는 상투적 기만책이다. 병사들이 전쟁상황의 공포와 불안 때문에 포로처우 규정과 인간적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저질렀으리란 추정조차 사태의 근본을 호도하는 것이다.
모든 게 전쟁의 악마적 속성에서 비롯된 듯하지만, 전쟁지휘부는 처음부터 이런 처우를 계획하고 용인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아프간 포로를 국제법 테두리 바깥의 존재로 다룬 데서 이미 드러났다. 특히 이라크에서는 군법과 복무수칙의 규제조차 벗어난 민간 전문가를 포로 심문에 대거 투입했다. 용병 수만 명을 동원해 전쟁 상황과 비용을 은폐한 것처럼, 저항세력 진압과 점령통치 안정을 위해 어떤 규제도 피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결국 사태의 발단과 책임은 이라크 점령정책 자체에 있다. 그 밖에 떠들썩한 책임 논란은 늘 그렇듯이 사태의 심각성을 흐리는 술책에 말려드는 것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사임 논란도 그가 사임이라도 하면 책임추궁이 마무리된 것 같은 결말을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는 이번 사태에서 이라크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다는 미국의 명분이 완전한 허구로 드러나는 것을 목격했다. 제국주의적 점령통치는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식민지 민중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는 것이라는 역사의 숱한 경험과 교훈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모험을 좇는 미국인 청년을 복면 괴한들이 참수한 충격도 포로학대 파문을 덮지 못했다. 알카에다라는 괴한의 정체부터 확실치 않고 사건 직전 미군이 청년을 억류한 의혹이 드러난 탓도 있지만, 저항세력의 잔혹행위와 점령국의 조직적 인권유린 범죄는 애초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영국을 비롯한 참전국에서 "침략 전쟁의 속성을 알면서 지지하고 동참한 우리도 결국 공범"이라는 양심의 소리가 높은 분위기와도 관련 있다. 이번 사태도 부시와 럼스펠드의 전쟁수행에 대한 군부의 반감이 표출된 것이란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게 제대로 된 사회의 모습이다.
우리사회의 파병 논란은 여전히 자유 정의 인권 등의 보편적 이념과 가치보다는 이기적 국익과 현실의 안위에 치우쳐 있다. 고상한 명분보다 탈없이 잘 먹고 잘 사는 일상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언성 높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식민통치와 전쟁과 독재를 거치면서 고문 등 온갖 인권유린 범죄를 겪은 국민이 현실의 이익에만 매달린다면, 밖은 물론이고 안에서도 자유와 인권을 떠들 자격이 없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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