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 우리 선조들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전개되던 변화에 대해 두가지 상반된 대응방식을 보였다. 수구파들은 증기선을 타고 내항한 메이지(明治)의 근대적 사절들에게 전통적 방식의 교린 관행에 입각한 예절을 요구했다. 반면 개화파들은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일본을 본받아 조선의 국정도 일대 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주변국의 변화에 대한 상반된 평가 속에서 적절한 대응방책을 도출해 내지 못했던 조선은 이후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채 일제 식민지화의 운명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후 평화헌법 하에서 최소한의 군사력 보유에 만족하면서 대외교역과 경제발전에 진력해오던 통상국가 일본이 현재 메이지기의 변화를 방불케하는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일본 자민당과 민주당은 2005년도까지 평화헌법의 개정초안을 제출한다는 일정표 속에서 개헌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여야당의 개정초안은 공통적으로 육해공군의 전력 보유를 금해왔던 제9조 2항을 개정, 정규 군대의 보유와 집단적 자위권의 인정 등을 명시하고 있다.
방위기구에도 중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방위청이 조만간 방위성으로 승격될 추세이며,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상설화될 것으로 보인다. 육해공 자위대에 분립된 군령권이 2005년경 신설되는 통합막료장의 휘하에 통합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테러작전을 담당케 한다는 명목 하에 우리의 특전사를 방불케 하는 특수부대가 300명의 소규모이긴 하지만 이미 지난 3월 도쿄 근교에서 창설됐다.
전수방위를 기조로 해온 군사전략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방위청 산하 방위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동아시아전략개관'에서 특정 국가가 탄도미사일로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에 착수할 경우 무력을 사용해 상대국 미사일 기지를 파괴할 수 있도록 공격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제언하고 있다.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이같은 군사독트린의 채택 및 군사제도변화가 계획대로 실현될 경우, 우리는 기존에 알고 있던 통상국가 일본이 아니라 새로운 일본의 출현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같은 일본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이 재차 군사대국화, 나아가 군국주의화의 길을 걷지 않겠는가라는 불안이 팽배한 것 같다. 더욱이 고이즈미 일본 수상이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일본의 우익단체가 독도를 항행하는 행위들이 일본에 대한 감정적 불신을 키워온 것이 사실이다. 식민지 지배를 겪은 한국이 일본의 외교안보정책 동향에 대해 민감한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변화가 민족주의적 정서의 표출로는 억제할 수 없는 대내외적 요인들에 의해 추동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일본 국내에서 전쟁의 참화를 경험한 바 없는 전후 세대가 사회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전후 고도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으며 성장한 그들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이 그에 상응하는 외교안보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 3월, 요미우리 신문사가 중의원 의원을 대상으로 헌법 개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력 보유를 금한 제9조의 개정여부에 대해서 찬성 의견이 70%에 달하고 있는 점이 일본 주류세대의 달라진 안보의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향적인 안보의식이 대두한 배경에는 90년대 후반 이후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 북한에 대한 위협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98년 일본상공을 지나는 대포동 미사일 실험발사를 실시했고, 99년 이후 수차에 걸쳐 공작선을 일본 연안에 침투시켰다. 게다가 2001년 9월 고이즈미 수상의 방북에 의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가 밝혀진 이후 북한은 냉전시대의 가상적이었던 소련을 대체해 일본의 주요 위협요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냉전시대의 유물로 치부되기 일쑤인 대북 위협의식이 탈냉전기 일본에서 만연하고 있는 점이 시대의 아이러니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안보의식의 강화 속에서 90년대 초반 일시 표류하는 듯이 보였던 미일동맹이 전략적 의도 하에서 재정의, 혹은 강화되고 있다. 일본은 90년대 후반 이후 주변사태법, 테러대책특별조치법 및 이라크특별조치법 등의 제정을 통해 미일동맹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안보역량을 강화하고 국제적 역할 확대를 도모해 왔다. 일본 방위체제의 변화는 미일동맹 강화의 또 다른 일면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최근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변화는 군국주의 회귀를 위한 전조라기 보다는 탈냉전기의 새로운 안보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보통국가화의 노선 추구로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통상국가 혹은 군국주의 일본의 이미지에 입각해 일본에 대한 대응을 강구하는 것은 변화하는 일본을 읽지 못했던 19세기 수구파의 우를 다시 범하는 일일 것이다.
보통국가로 변신하는 일본의 안보정책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유지에 어떻게 유효한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책일 것이다. 새로운 일본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동아시아 안보지형에 대응하는 한국발 동아시아 대전략 구상이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고 하겠다.
협찬:SK주식회사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조교수/ 41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외교학과 대학원 석사, 동 박사과정 수료, 도쿄대 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논문 "21세기 일본의 국가구상 논쟁과 그 정책적 전망" 등
■이지스함·조기경보기…日 무기체계로 보면 전수방위 이미 초월
'오로지 방어만 한다'는 뜻의 전수방위(專守防衛)는 '비군사대국화', '비핵3원칙'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방위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아왔다. 이를 근거로 일본 자위대는 대륙간탄도탄(ICBM)과 장거리전략폭격기, 항공모함 등 '국경을 넘어 타국을 공격할 수 있는 장비'를 공식적으로 보유하지 않고 있다.
전수방위란 용어가 일본의 방위정책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970년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방위청장관 시절 공표된 방위백서에서 '우리나라의 방위는 전수방위를 본래의 취지로 한다'고 기술한 것이다. 당시 정황상 일본 헌법 9조의 '전쟁 포기'조항과 자국 방위권을 명시한 자위대법 3조의 '임무' 조항간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적 개념이 강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전수방위 원칙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의회에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방위청장관이 소위 '적기지공격론'을 언급하면서부터 이다. 북한 같은 특정국가가 일본을 향해 미사일공격에 착수했다고 인정한 시점에서 적의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는 그의 견해에 대해 '전수방어를 일탈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적기지공격론'은 이시바 장관이 처음 주창한 것은 아니다. 1956년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내각시절 이미 정부 의견으로 제시된 바 있다. 결국 언급 주체가 '신국방족''일본의 네오콘' 등으로 불리며 헌법개헌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이시바 장관이라는 점이 전수방위 원칙을 파기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강하게 자아낸 것이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일본은 이미 무기 체계면에서 사실상 전수방위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첨단 장비인 이지스함과 조기경보기(AWACS), 지난해 발사에 성공한 정보수집위성 등은 방어형 무기라고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본이 전형적인 전수방위형 시스템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시스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현재 이 같은 현실과 주변 정세를 토대로 전수방위 원칙을 재검토하기 위한 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