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스승의 날이라는 걸 알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린 자식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것이 고마워 선자 아버지는 안곡 약수터의 약수 한 주전자를 받아 선생님께 보낸다. 선자는 이 손 저 손 바꾸어가며 주전자를 들고 학교로 온다.그날 선생님 책상 위엔 또 하나의 주전자가 놓여 있다. 명희 아버지도 집에서 몰래 담근 밀주 단지 위에 뜬 청주 한 주전자를 걸러 명희 편으로 보냈다. 그 주전자 역시 촐랑촐랑 길가에 술을 흘려 교실까지 왔을 땐 절반 조금 더 남아 있었다.
아직 공부도 시작하지 않은 아침에 명희가 말한다. "우리 아버지가요, 그거 오래 두면 쉰다고 빨리 자시래요" "그래?" 선생님은 주전자를 들어 그 자리에서 물처럼 벌컥벌컥 한 모금을 마신다. "카아, 좋다. 아버지한테 선생님 아주 좋아하더라고 해라. 선자도 그렇게 말하고" "예" 우리는 합창을 하듯 박수를 친다.
오늘은 강릉에 계신 스승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가끔 내려가 얼굴도 뵙고 해야 하는데, 마음만 그럴 뿐 늘 걸음이 멀다. 우리 어린 가슴에 참으로 따뜻하게 내일을 밝혀주시던 권영각 선생님. 멀리서 제자가 절을 올립니다.
이순원/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