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없고 빽도 없고, 그렇다고 로또에 당첨될만한 조상의 은혜도 입지 못한 소시민이 단숨에 10억을 버는 방법은? 물론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그래도 굳이 찾으라면 기발한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대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하지만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능력과 성실 이전에 아이템이 필수적이다. 사람을 솔깃하게 만들 수 있는 기발한 아이템.SBS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에도 그런 아이템이 필요한 듯 싶다. 이 드라마는 남녀가 원치않는 동거를 한다는 점, 생활력 강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연출자 장기홍 PD의 전작 '명랑소녀 성공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명랑소녀…'와 결정적인 부분에서 한가지 차이가 있다. '명랑소녀…'는 기업의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이라는 꽤 '스케일 큰'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온갖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일으켜 남녀 주인공을 다투게도, 사랑하게도 만들 수 있었다. 기업을 무대로 하는 것이니 벌어질 일도 많고, 그들을 방해하는 적도 강력하다.
반면 '파란만장…'의 은재(김현주)와 무열(지진희)은 경영권을 되찾아야 할 기업도 없고, 단숨에 상황을 역전시킬 특출난 능력을 가지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그만큼 '파란만장…'의 스토리는 '소규모'이고, 그래서 스토리를 재미있게 끌고 갈 기발한 아이템이 필요하다. 10억을 벌기 위해 둘이 어떻게 노력하느냐, 10억을 벌지 못한다 해도 그 과정속에서 어떻게 둘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느냐가 스토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란만장…'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나칠 정도로 뻔한 아이디어들에 의존한다. 은재와 무열은 맨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드라마가 후반에 이르도록 해본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꽃가게와 노점상 차리기 정도이고, 기껏해야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뿐이다.
드라마 자체가 몇달 사이 '10억'을 만들어야 하지만, 정작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시청자의 상상력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들은 무슨 사업을 벌여도 은재의 연적인 우경(김성령)의 방해에 의해 금방 포기하고, 다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또 다른 일을 시작하면서 똑같은 과정을 겪는다.
남녀의 사랑을 이어주는 방법에 있어 쓰는 아이템이라곤 '여자 혼자 있는 방에 쥐 들어와서 남자가 쫓아내기' '좋아하는 여자가 우연히 옛 애인과 있는 모습보기' 같은, '명랑소녀…' 때 썼어도 뻔해보였을 것들이라 식상하다.
MBC '옥탑방 고양이'가 콩나물 하나 로 별별 상황을 만들어낸 것도 벌써 작년 얘기 아닌가. 그래서 주인공들은 시청자들은 식상하게 생각하는 상황들을 큰일 난 것처럼 과장해야 하고, 그만큼 드라마는 코믹한 장면과 심각한 장면이 서로 섞이지 못하고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도 난감하게 된다.
그러니 '10억 만들기'라는 제목에 혹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저래서 10억 언제 벌겠냐"는 말을 한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몇 달 만에 10억 만들기는 '정말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건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명석/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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