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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스님의 태평양 횡단기]<2> 태평양 건널 배 준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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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스님의 태평양 횡단기]<2> 태평양 건널 배 준비하기

입력
2004.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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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평범한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 이를테면 길이 6m 정도의 작은 보트를 타고 그것도 여자가 혼자 노를 저어서 큰 바다를 건넜다는 소식을 전한다. 어떤 이는 카약을 타고 긴 여행을 하기도 한다.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나도 긴 항해를 할 자신이 생겼다.최초에 내가 접한 배는 2.7m 길이의 고무 보트였다. 바람을 빼면 차 트렁크에 실을 수 있고 바람을 넣은 후 엔진(5마력)을 달면 움직일 수 있다.

그 보트로 충주댐 이곳 저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었고, 서해의 만리포 연포 몽산포 청포대 등까지 항해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뒤에 콤비보트로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그걸로 변산반도를 거쳐 흑산도 홍도까지 가기도 했다.

고무보트는 엔진과 연료가 있어야 한다. 나는 연료 필요 없이 바람으로만 가는 배를 생각했다. 그래서 길이 5m짜리 2인승 카타마란을 구입했다. 그 배를 타면서 나는 바람을 이용하는 기본 원리를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안흥항의 북쪽 앞바다에서 아주 강한 폭풍을 만나서 넘어지게 되었다. 지나는 어선이 나를 구하고 카타마란을 어항까지 끌고 갔다. 견인해 가는 도중에 돛대가 몇 번 곤두박질 쳤는데, 도착해서 보니 돛대가 꺾여 있었다.

나는 충무 마리나에서 요트 항해 기법을 가르치는 김태헌씨의 소개로 오래 전 김한준씨가 제작했다는 트리마란을 인수하게 됐다. 그걸로 안면도 대천 서천 일대를 누볐다.

하루는 도반들과 함께 백사장 부근에 갔는데 도중에 조타장치가 듣지 않았다. 날은 어두워져 갔다. 그 자리에 닻을 내리고 다음날 고치러 가 보니 배의 기관실에 이미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해양경찰의 도움을 받아 백사장항으로 견인하던 중에 배는 완전히 침몰되었다.

인양해서 부력을 높이기 위한 수리를 하고 보니 배는 더욱 무거워졌고 웬만한 바람을 받아도 속력이 나지 않았다. 배의 무게에 비해서 돛 면적이 좁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번엔 돛대를 높이는 시도를 했다. 시흥 유통상가에서 알루미늄으로 밴딩을 하고 그것을 엮어서 돛대를 길게 만들었다. 그런데 돛대를 배에 올리는 작업 중에 돛대 중간이 휘어져 버렸다.

두 번 만에 성공적으로 돛대를 올렸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에 황도 주민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바람에 배가 흘러내려서 안면도와 황도를 잇는 다리에 부딪쳤고 꺾어진 돛대가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잔해를 치우면서 나는 돛대 만들기를 완전히 포기했다.

요트 봉사회를 운영하는 부산의 전우홍씨에게 태평양 횡단 계획을 말하고 그의 배로 수 차례 시험항해를 해 보았다. 그러나 막상 바다에 나가 보니 그런 배로 태평양을 왕복하는 일은 늙은 나에게 너무 벅차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미국의 감윤근 홍명숙 신도, 한국의 구인회 도반, 허공장회 신도 등의 도움을 받아 홍콩의 한 회사가 20년 전 중국 본토에 발주한 중고 배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인수하고 '바라밀다(波羅蜜多)'란 이름을 붙였다.

태평양의 무서운 폭풍과 산과 같은 파도에 엎어지고 자빠지기를 수천 번 반복하면서 '배와 돛대를 만들려 했던 시도가 실패한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제작한 배나 돛대로 항해를 했다면 나는 죽어 있을 것이 뻔하다. 실패가 오히려 나를 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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