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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스님의 태평양 횡단기]<1> 나는 왜 바다에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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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스님의 태평양 횡단기]<1> 나는 왜 바다에 갔는가

입력
2004.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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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엽편주(一葉片舟) 무동력 요트에 몸을 싣고 태평양을 횡단한 전 법주사 주지 석지명(釋之鳴) 스님의 항해기를 오늘(17일)부터 7회 연재합니다. 한국일보가 창간 50주년을 맞아 서울경제,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와 함께 기획한 지명스님의 태평양 요트횡단은 4개월간 6,400마일(1만300여㎞)의 바닷길을 헤쳐온 구도(求道)의 대장정이었습니다. /편집자 주

세계의 높은 산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숨쉬기조차 힘든 고통을 감내하며 정상에 오르는 전문 등산가들에게 던져지는 단골 질문이 있다.

"왜 산에 오르느냐?"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답이 하나다. "나도 모르겠다."

나에게 "왜 출가승려가 산에서 수도하지 않고, 바다에서 배를 타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도 저 등산가들의 대답과 비슷할 것 같다. 어떤 특별한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나에게 있어서 배를 타는 것은 "이유"가 아니라, "인연"으로 설명하는 편이 더 쉬울 것 같기 때문이다.

'화엄경'에는 바다를 귀히 여기고 10가지 공덕을 제시한다. '해팔덕경'도 마찬가지로 바다를 높이 쳐서 8가지 공덕을 열거하며 바다를 찬탄한다. 나는 저 불경들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하되, 바다의 다른 측면 또는 특징들을 강조해서 12가지로 정리하기도 했다.

바다는 온갖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다. 바다의 손길이 닿은 곳에는 멋있는 경치가 있다. 바다는 무한하다. 바람만 있으면 저 바다의 몸을 타고 끝없이 갈 수가 있다. 바다는 무상을 가르쳐 준다. 자신의 몸을 뒤틀어서 파도의 시작과 끝을 한꺼번에 다 보여줌으로써, 인생도 저와 다를 바 없음을 느끼게 한다.

내 은사 스님의 은사, 즉 할아버지 스님이 "금오대선사"인데, 일생 내내 참선만 닦고 가르쳤다. 그 큰스님이 윤선도 선생의 유배지인 보길도의 한 토굴에서 수도를 했다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정진한 큰스님을 생각하면서, '나도 바다에서 수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애 같은 발상이지만, 인연 있는 스님의 수행처가 바다 옆이었다는 것이 나를 바다로 더욱 가까이 끌어 당겼다.

범어사 강원에서 불경을 공부하던 어릴 때였다. 다른 스님과 함께 큰 방을 청소하는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모든 대중 스님들이 큰 법당으로 예불 들어간 사이에 부산으로 가는 신도님의 차를 얻어 탔다.

부산시내에서는 걸어서 영도다리를 건넜고 바닷가에서 밤을 보내고 절로 돌아왔다. 절에서는 동자승 둘을 찾기 위해 난리법석이 일었다고 한다. 우리는 죽비로 맞고 대중 스님에게 엎드리고 법당에서 수백 번 절하면서 참회를 했다.

영천 죽림사에서 변각성 큰스님을 모시고 경을 읽을 때에 여름의 며칠은 외출하도록 해 주시라고 부탁했다. 포항의 해수욕장에 가서 물 속에 몸을 담가 보고 오기 위해서 그랬다. 불교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울 마포의 한 독서실에서 숙식하며 지낸 적이 있다. 그때에도 여름의 하루는 한강에 나가서 혼자서 수영복도 입지 않고 강을 건너곤 했다.

동국대에 다닐 때에는 변산 해수욕장의 다이빙대에 올라가서 거꾸로 다이빙하는 재미를 보곤 했는데 하루는 썰물 때에 물이 얕은 줄 모르고 다이빙을 해서 얼굴이 크게 다쳤고 도반들로부터 놀림을 당한 적도 있다.

도반들과 함께 사이판의 한 해수욕장에서 수영한 적이 있는데 햇빛에 알몸을 갑자기 너무 노출한 나머지 그 부작용으로 현재 나의 전신은 검은 점으로 덮이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바다는 세례 하는 신앙 의식의 물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바다를 찬탄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 바다인 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청계사에 있을 때 한 신도님이 김원일씨의 태평양 횡단 항해기 책을 가져왔다.

김원일씨는 요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위성항법장치(GPS)도 없이 작은 배를 타고 혼자서 태평양을 건넜다. 부산에서 일본까지, 일본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하늘의 별을 보고 항로를 잡았다고 한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생사해탈을 하겠다고 하는 나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일반 속인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태평양을 건너지 않는가.

그 뒤에 강동석씨의 단독 태평양 횡단과 세계일주 소식을 들었다. 물론 항해기도 읽었다. 김현곤씨가 캐나다에서 단독으로 하와이, 일본을 거쳐 부산까지 항해했다는 말도 들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발행되는 세일보트에 관한 잡지들도 구독했다. 외국에서는 큰 바다 건너기를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행한다는 것도 알았다.

누가 이번 태평양 횡단 항해의 공식적인 목적을 묻는다면, 나는 "한미우호, 국운융창, 남북통일, 세계평화, 고혼천도, 진리세상, 해탈발원" 등을 외워 댈 것이다. 다시 "허튼 소리 지껄이지 말고 진짜 속 마음을 털어놓아 봐"라고 다그친다면 나의 다겁생래 업장과 고독과 체념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미련과 집착을 벗겨내려고 해도, 양파처럼 새로운 껍질이 생긴다. 완전히 벗길 때까지, 완전히 삶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영원의 고요를 얻을 때까지, 공부가 덜 된 마음이 스스로 지어내는 "유희에의 유혹"을 삭힐 방편이 필요하다.

그래, 저 태평양 횡단의 항해는 나의 "헐떡임"을 덮거나 싸잡아 놓기 위한 하나의 보자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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