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 사건에 대해 기각 결정을 선고, 2개월여 동안 직무가 정지됐던 노무현 대통령의 권한을 회복시키는데는 불과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인터넷 추첨으로 입장권을 받은 방청객과 내외신 기자 등 150여명이 헌재 1층 대심판정을 가득 메운 가운데 국회 소추위원측과 노 대통령 변호인단이 입정한 것은 오전 9시50분께. 다소 상기된 표정의 소추위원측과 대리인단측은 간단한 목례만 주고받았을 뿐, 시종 입을 굳게 다문채 침묵을 지켰다.
오전 10시 조금 지난 시각, 윤영철 헌법재판소장과 주심인 주선회 재판관 등 9명의 재판관들이 입정했다. 윤 소장은 재판관들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결정을 선고하겠다"며 사건번호와 사건명 등을 공표한 뒤 차분하게 결정문을 읽어내려갔다.
윤 소장이 결정문 서두에서 변호인단측이 주장한 국회 탄핵소추 의결 과정에서의 하자 부분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뒤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을 인정하는 결정문 내용을 읽어 내려가자 변호인단측에서는 일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반면 소추위원측은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윤 소장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위반"이라고 말하는 순간 방청석은 엄청난 중압감에 휩싸였다. 이어 "법치와 준법의 상징이어야 할 대통령이 선관위의 결정에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자신에게 부여한 헌법과 법률 준수 의무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대목에 이르자 하경철 변호사 등 일부 변호인단 관계자들은 아예 굳은 표정으로 눈을 감거나 천장을 응시하기도 했다.
오전 10시25분께 윤 소장이 "사소한 위법 행위로 인해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는 주장은 법익형량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기각을 선고하자 변호인단과 소추위원측의 명암은 엇갈리는 듯했다. 그러나 윤 소장은 선고후 "대통령은 스스로 헌법을 준수해야 하며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훈계'를 잊지 않았다.
윤 소장과 재판관들이 오전 10시30분께 퇴장하자 소추위원과 대리인단 양측은 별다른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서둘러 법정을 떠났고, 방청객들도 재판부의 결정을 어느 정도 예상한 듯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역사적인 사건을 현장에서 보고 싶어 밤차를 타고 대구에서 상경했다"는 중학생 문영준(15)군은 "이제 대통령이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셨으니 밝은 정치로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청객 김모(45) 씨도 "예상했던 결과라 담담하게 들었다"고 방청 소감을 말하고 "앞으로는 원칙과 상식에 따르는 정치를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주심인 주선회 재판관은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이라며 그간 느꼈을 부담감을 토로했다.
주 재판관은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 수에 대해 "죽을 때까지 이야기하지 않기로 (재판관들과) 약속했다. 평가는 역사의 몫"이라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했을 뿐 정치적 고려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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