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이란 무엇일까.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이제 막 출간된 듯한 책이 눈에 띄었다. '청춘의 문장들'을 보는 순간 내 청춘에 서있었던 어두웠던 골목길들이, 낮선 여행지들이, 쓸쓸했던 사랑들이,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볼프강 볼헤르트, 마레크 흐레스크,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가스통 바슐라르, 폴 엘리아르, 마리로랑셍…. 내 청춘을 생포했던 작가들, 밑줄 그으며 읽었던 문장들, 읽다가 주체할 수 없어 엉엉 소리내어 울며 바라보던 구름들.
작가는 청춘의 문장을 역시 그가 읽었던 책에서 찾아낸다. 이백과 두보의 시, 이덕무와 이용휴의 산문, 이시바시 히데노의 하이쿠, 김광석의 노랫말 등 젊은 날을 사로잡은 아름다운 문장들을 이 책에서 들려준다. 그에게 있어서의 청춘의 문장은 바로 두보의 '곡강이수(曲江二首)'란 시 한 수에 모두 들어있었다. 어려웠고 힘들었던 시절,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시절이 바로 청춘의 시절이었음을 그는 두보의 시에서 깨닫는다. '한 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거니/ 바람 불어 만 조각 흩어지니 시름 어이 견디리/ 스러지는 꽃잎 내 눈을 스치는 걸 바라보노라면/ 많이 상한 술이나마 머금는 일 마다하랴.'
무릇 청춘이란, 꽃시절이란, 허무함이란 말이다. 꽃잎 하나가 지는데도 봄빛이 깎이거늘 하물며 수만 꽃잎들이 지는데 어찌 생이 무상하지 않겠는가. 지나가는 그 청춘 앞에서 어이 술을 안 마실 수가 있겠는가. 청춘은 그렇게 꽃잎을 떨구고 가버렸고 그리하여 '아아, 장차 어찌할꼬 이 청춘을'이라고 말한 설요의 시처럼, '청춘을 물끄러미 세워 놓고'라고 말한 기형도처럼, 절절매며 청춘의 문장을 적어놓았던 것이다.
정릉 산꼭대기에서 내가 청춘을 보낼 무렵 그가 청춘을 시작하러 왔었다. 정릉 산꼭대기, 목을 조이던 아카시 꽃 냄새와 쥐똥으로 얼룩지던 단칸방과 라면으로 채우던 식사들, 너무 더워 들어갈 수조차 없던 집과, 어린 고양이를 주어와 가을이라고 이름 붙이던 쓸쓸했던 가을들이 한데 어우러져 내 청춘에 보라색 제비꽃 향기로 남아있다.
이 책에 있어서의 청춘의 문장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젊은 날의 좌절과 실의와 절망과 탕진과 실연과 패배와 숙취들, 그것들을 어깨에 걸러 매고 읽고 쓰고 이야기하며 취했던 날이 바로 청춘의 문장인 것이다. 당신에게 있어서의 청춘의 문장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말씀이었던가, 꽃의 말씀이었던가, 여행지에서의 깨달음이었던가, 아니면 애인의 속삭임이었던가.
/권대웅·화니북스 편집주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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