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령 평전첸팅이 지음·이양자 옮김
한울 발행·3만8,000원
밤이 길면 꿈도 많다지만, 여성으로서 이처럼 오랫동안 화려한 꿈을 펼치며 명예롭게 살다간 인물이 또 있을까.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 '가장 존경할 만한 여성' '가장 아름다운 여성' 등 최상급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쑹메이링(宋美齡·1897∼2003)여사. 장제스(蔣介石·1887∼1975)라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와 결혼, 어두운 중국의 현대사에서 묵직한 발자국을 남긴 여걸의 삶을 따라가보는 일은 어떤 드라마, 어떤 소설보다도 감동적이다.
그녀의 인생을 뒤바꾼 장제스와의 인연은 우연한 곳에서 운명적으로 시작된다. 상하이에서 반건달처럼 지내던 장제스는 성병을 치료하기 위해 둘째 부인과 병원을 찾았고,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아하고 오만한 여인을 만났다. 당시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쑹메이링의 야심도 만만치 않았다. 장제스의 잠재력을 알아본 쑹메이링은 그가 두 번이나 결혼했고 첩까지 있다는 사실도, 어머니와 둘째 언니 쑹칭링(宋慶令)의 강력한 반대도 장애물로 여기지 않았다.
1927년 12월 명실공히 '퍼스트 레이디'로서 날개를 달게 된 그녀는 남편의 개인비서이자, 외교고문으로서 전쟁터와 세계 각국을 누볐다. 1943년 카이로회담 때 통역관도 그녀였다. 1937년 장제스가 시안(西安)에서 군벌들에게 납치된 시안사건 때는 직접 공산당 대표인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담판, 두둑한 배짱과 놀라운 협상력을 인정 받았다. 1942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의 능수능란한 외교솜씨를 보고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송미령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장제스가 만년에 그런 아내에게 "지혜로 따지면 제갈공명 아내를 능가하고, 능력으로 말하면 측천무후도 비교할 수 없으며, 강하기로 말하면 서태후보다 백배"이라고 말했던 것도 과찬은 아닌듯 보인다. 하지만 가정생활 자체는 그다지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끝없는 바람기로 눈물을 흘려야 했고, 본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와 권력투쟁을 벌였다.
근대 중국에서 쑹씨 집안의 세 자매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쑹메이링은 특히, 쑨원(孫文)의 비서로 들어가 혁명가의 아내로, 또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둘째 언니 쑹칭링과 자주 비교된다. 81년 쑹칭링이 죽기 전 중국정부는 쑹메이링에게 전보를 쳤으나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가지않았다. 또 쑹메이링은 죽어서도 고향인 상하이로 돌아가거나, 대만에 있는 남편 묘에 합장되는 것을 거부하고, 지난해 미국 땅에 묻혔다. 생전에 그녀를 비난했던 중국정부도 '항일구국의 영웅'이라고 기렸다.
'송미령 평전'은 19세기에 태어나 21세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그녀의 발자취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복원하고 있다. 죽음을 무릅쓴 항일투쟁 종군과정이나 대만으로 쫓겨갈 때 금은보화를 가져갔던 일, 남편을 유혹하는 새파란 처녀를 타일렀던 일 등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처럼 기록했다. 중국의 중견작가인 첸팅이(56)가 20여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10년 가까이 쓴 이 책은 그러나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90년대 초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권력지향적이고 콧대 높은 여인이 어떻게 "신비하고도 걸출한 동방여인"으로 우뚝 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었다고 한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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