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2개월간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한 고건 총리는 국정을 무난하게 관리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국정의 안정적 관리자라는 역할규정에 주력했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덕분"이라고 했다.대행 초기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탄핵안 가결을 강행한 야당이 국회의 시정연설을 요구하고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제한하자는 개정안도 처리해야 했다. 시험대에 오른 고 대행은 수 차례의 관계장관 회의와 청와대와의 조율 끝에 정치적 논란없이 이 현안을 매듭지었다. 이어 탄핵반대 촛불집회와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특정정당 지지선언이 불거지는 바람에 공정한 선거관리가 도전을 받았다. 4월말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1주일과 촛불시위 전후가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엄정하게 대처, 4·15총선을 무사히 치러냈다.
역할모델이 없어 힘들었던 초기와 달리 4월 이후로는 안정된 국정운영자의 면모를 보였다. 고속철도 개통과 EBS수능강의 등이 대행체제에서 무난히 출범했으며 원자재 대란이나 대외신인도 하락불안 등의 경제문제도 잘 헤쳐나갔다. 특히 총선일에 방한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과 만나 이라크 파병원칙을 재차 확인함으로써 "이라크에 대한 한국의 기여에 감사한다"는 동맹의 화답을 이끌어내면서 외치(外治)의 시험대도 무난히 통과했다.
그러나 대통령 고유의 영역에서는 몸낮추기로 일관했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직접 주재하지 않고 청와대 정책실장과 국무조정실장과의 핫라인을 통해 정책조율만 한 것이나 정부의 차관급 인사를 청와대가 발표하도록 한 것 등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예우차원이었다. 청와대 본관 집무실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유권해석에도 외국대사 신임장 제정식 때 한차례 청와대를 찾았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을 국정관리자로만 한정지음으로써 통치권자의 결단이 필요한 정책분야는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라크 파병지 확정이 지연되고 정부조직개편안 작성, 신행정수도 건설추진 등도 차질을 빚었다. 총리실 관계자도 "통치권자의 철학과 의지가 철저히 반영된 참여정부의 중장기 국정과제는 추진에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놓으며 "대행체제와 관련한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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