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0월 충남 홍성은 규모 5.2의 강진에 흔들렸다. 2년 뒤인 80년에는 평북 삭주에서 규모 5.3의 지진이 일어났다.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안도감이 흔들리면서 경각심이 싹텄다. 그 덕분에 88년부터 건축물 내진설계 기준이 적용됐고, 92년에는 교량에 대한 내진설계 기준도 도입됐다. 하지만 그런 경각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94년 성수대교,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국내 구조물의 약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는데도 지진은 남의 나라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우리는 안심하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일시 귀국한 독일 포츠담 지구물리연구소(GFZ―포츠담) 인공위성통제센터 책임연구원 최승찬(崔承讚) 박사는 고개를 강하게 가로저었다.
●약력
1963년 경기 파주, 41세 서울대 농대 임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 지구물리학 석사, 박사 독일 포츠담 지구물리연구소(GFZ―포츠담) 책임연구원
―최근 기상청 세미나에서 발표한 '한반도의 대륙 충돌대 위치 추정'을 요약해 주십시오.
"한반도는 유라시아판의 일부인 남중국판과 북중국판의 이동 및 충돌의 결과 생성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중국에서는 친링(秦嶺)―다비에(大別) 충돌대와 산둥(山東) 반도를 가로지르는 탄루 단층이 확인돼 남·북중국판의 경계면이 밝혀졌지만 그 충돌대가 한반도의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아직 정설이 없습니다. 다만 경기 육괴(陸塊) 바로 위쪽의 임진강대, 경기 육괴와 영남 육괴를 가르는 옥천대 등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두 습곡대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 왔지요. 세미나에서 저는 인공위성 탐사 자료와 그 동안의 지진 기록 등을 근거로 남·북중국판 충돌대의 연장선이 황해를 건넌 후 해주에서 경기 서부, 홍성·청양·공주 등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새로운 충돌대인데 근거는 무엇입니까.
"대륙 충돌에 따른 고압·고온의 작용으로 형성된 변성암인 에클로자이트나 흑연이 고압·고온을 받아 변한 결과인 다이아몬드 등이 충돌대의 증거가 됩니다. 중국의 탄루 단층대에서는 에클로자이트나 다이아몬드가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반면 임진강대나 옥천대에서는 무스코바이트나 앰피볼라이트 등 생성 압력과 온도가 에클로자이트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변성암이 발견돼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최근 전북대 오창환 교수가 홍성 지역에서 옴파사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생성 온도와 압력이 에클로자이트와 비슷한 변성암이어서 이 지역이 충돌대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물적 증거지요. GFZ―포츠담의 인공위성 측정 자료를 통해 제가 추정한 한반도의 충돌대 위치와 일치합니다."
―인공위성 측정 자료란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인가요.
"인공위성 '챔프'는 자기장을 측정하고, '그레이스'는 중력장을 측정합니다. 항공사진이나 지표 광물의 출토가 겉모습을 살피는 데 그치는 반면 자기장·중력장 측정은 지하 10∼30㎞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동북아 지도 위에 표시된 자기장·중력장 분포 그림을 보여주며) 중국의 친링―다비에 충돌대와 탄루 단층은 자기장이나 중력장의 이상(Anomaly) 분포와 일치합니다. 그것이 황해를 건너와 해주에서 급하게 남쪽으로 꺾여 동경 126도선을 따라 남쪽으로 흐릅니다. 바로 이 선이 중국쪽 충돌대의 연장선으로 추정됩니다. 중력장을 측정하는 '그레이스'는 쌍둥이 위성으로 삼각측량을 연상시키는 정확한 입체자료를 얻을 수 있어 신뢰도가 높습니다. 또 자료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중국 국가연구소가 30년 간 측정한 자기장 자료와 비교해 보았는데 우리 황해안 지역의 정보는 빠져 있었지만 연장선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충돌대 연장선을 추정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지진은 기본적으로 판과 판의 접촉과 충돌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흔히 판 경계면에서 일어납니다. 한반도는 일본과 달리 판 경계면에서 떨어져 있고, 유라시아판 위에 위치해 있어 이런 지진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나 판 경계면의 지진과 달리 판 안쪽에서도 때로는 거대 지진이 일어납니다. 판끼리 서로 미는 과정에서 지각 내부에 응축된 압력이 약한 곳으로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지진의 흔적인 활성단층이나 소규모 판의 경계면인 충돌대가 바로 그런 약한 곳에 해당합니다. 한반도의 충돌대 추정은 지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78년 홍성 지진도 충돌대와 연관이 있다는 얘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근의 한반도 지진 통계 자료를 자기장·중력장 이상 분포와 함께 살펴봤더니 거의 겹치고 진원의 깊이가 20㎞ 미만인 얕은 지진은 정확히 겹칩니다. 북한 지역의 충돌대는 오래 전에 충돌이 끝난 것으로 추정되고 지진 통계로도 진원이 깊은 지진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서해안 지역은 지진이 활발해 지금도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얕은 지진일수록 규모에 비해 피해가 크고, 인구밀집지역인 수도권과 가까워 걱정이 큽니다."
―인공위성 자료를 근거로 한 충돌대 추정만으로 지진 위험을 거론할 수 있나요.
"그것만은 아닙니다. 태평양판과 필리핀해판, 유라시아판의 일부인 아무르판 등의 상호작용에 의한 네 방향의 힘이 한반도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구위치확인시스템(GPS) 관측 자료를 확인한 결과 강릉은 서남서, 대구는 서북서, 전주는 북북서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습니다. 힘의 방향과 크기로 보아 네 방향의 힘은 홍성·청양 일대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태풍의 눈과 같은 상태인 이 힘의 균형은 네 방향의 힘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변화할 경우 무너져 지진으로 이어질 수 있지요. 또 역사적으로도 한반도는 결코 지진안전지대가 아닙니다. 779년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나 100여명이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당시의 건축물 특성을 감안하면 대단한 규모의 지진이었을 겁니다. 전쟁 중의 일이라 무시됐지만 52년 3월 황해도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지요. 최근 동북아의 지진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도 불안합니다."
―지진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얘긴가요.
"우선은 학계가 GPS 자료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반도에 미치고 있는 압력의 실체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반 국민의 지진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책적 대응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아직 독자적인 진도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했으니 일반인들이 지진에 대해 피부로 이해하고 방재 의식을 가질 수가 없지요. 구조물에 대한 내진 설계 기준을 뒤늦게 도입했지만 외국 기준을 베낀 것이어서 한반도의 지반·지진 특성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내진설계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특히 88년 이전의 건축물과 92년 이전의 교량 등은 무방비 상태라고 할 수 있지요. 듣기로는 미국 동부지역의 설계 기준을 많이 참고했다는데 미국 진도 등급으로는 12등급 가운데 대략 6등급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 정도라니 우려가 클 수밖에요. 내진설계 기준의 강화가 시급합니다."
황영식 편집위원/yshwang@hk.co.kr
■지진, 규모로 표시 1 커질 때마다 에너지 30배 증가
지구는 흔히 달걀에 비유된다. 중심에 달걀 노른자처럼 핵이 있고, 그 주위를 맨틀이 흰자처럼 감싸고 있으며, 그 바깥에 달걀 껍질 같은 지각이 있다. 지각은 달걀껍질과는 달리 여러 개의 판으로 나뉘어져 있고 맨틀의 대류현상의 따라 늘 움직이고 있다.
판과 판이 서로 미는 과정에서 축적된 힘에 의해 지각에 갑자기 금이 가거나, 판끼리 충돌할 때 대량의 에너지를 쏟아낸다. 이 지각 파괴나 충돌, 그에 따라 분출된 에너지가 지표면에 전달되는 현상을 통틀어 지진이라고 한다. 또 이 에너지에 의한 지표면의 진동을 지진동이라고 구분해서 부르나 크게는 지진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지진의 크기는 규모(매그니튜드·M)로 나타낸다. 규모는 진원에서의 지진에너지를 나타내며 1 커지면 지진에너지는 25∼30배나 커진다. 그러나 지진의 규모는 지표면에서 느끼는 지진동의 크기를 바로 알려주진 못한다.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도 진원으로부터의 거리가 멀수록 지진동은 약하고, 지질구조 등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달라진다.
지진동의 크기를 인간의 감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쉽게 나타낸 것이 진도(震度)이다. 미국에서는 수정메르칼리(MM) 진도 등급(등급)을, 일본에서는 기상청(JMA) 진도 등급(8등급)을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한동안 JMA 진도 등급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진도 등급을 구분하지 않고 규모만을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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