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홍보대사 임명' '한류스타 일본정벌에 나선다'…. 최근 일본에까지 한류가 상륙한 사태를 놓고, 정부와 언론이 벌이는 난리법석은 가히 극에 달한 듯하다. 이는 소니, NHK 등 일본 문화자본이 자기문화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아시아 각국의 현지 스타 육성 등 해당국의 문화자원을 이용해 동아시아를 파고들면서 일본정부의 신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교묘히 결탁, 지역전략을 구사해가는 방식과는 확실히 비견되는 졸부적 대응이 아닐 수 없다.물론 우리 경제의 불투명한 미래를 감안하면 한류에 대한 경제적 집착, 문화를 경제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천박한 경제논리를 무작정 비판만 할 수는 없는 형국이다. 동북아경제중심국가라고 아무리 외친들 결코 중심이 될 수 없는 냉엄한 현실, 그에 따라 허브 한반도로서의 매개와 유통의 위치를 강조해보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아 틈새를 파고 들 수 밖에 없는 이 궁박한 생존의 몸부림. 과연 그것은 누구에 의한 무엇을 위한 박투인가.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분명하게 갈라진다.
안타깝게도 한국과 동아시아의 21세기 문화적 관계망은 자본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조장되고 있다. 한류란 결국 이들 거대문화자본이 기획·조직하는 21세기형 문화산업의 버전인 것이다.
국가주의와 자본의 논리를 넘어서면 한류의 진정한 자리매김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고려민족이 특유의 강인함과 근엄한 정신으로 21세기에 올린 개가"라고 하는 한류, 거기에는 제3세계, 오랜 '변방살이'에서 비롯된 비판성 강한 문화해독력이 생동하고 있다. 월드컵과 촛불시위, '지하철1호선'의 중국 베이징 공연을 진정한 한류로 가름하듯이 식민지·분단·독재의 참혹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일구어낸 빛나는 관계지향의 문화, 역동적인 문화생산력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같은 진짜 한류를 어떻게 동아시아의 부박한 살림살이 속에 물처럼 스며 흐르게 할 것인가, 상호반목해온 불행한 역사경험을 어떻게 하면 진정한 이해와 소통의 통로로 만드는 문화적 온기로 감싸 돌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의 관건이 된다.
돌이켜보면 언제 우리가, 우리 문화가, 국경을 넘어 이처럼 무단횡단, 회통해본 적이 있던가. 이 회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한류스타의 팬사이트를 들여다 보면, 한류는 지금 네티즌들의 '말걸기'와 '댓글달기'라는 발랄한 문화횡단, 상호소통을 통해 새로운 동아시아의 지역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 험한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우리의 경제·정치적 발전, 민간사회의 높은 정치의식과 조직화 정도, 사회의 관계적 활력은 이미 세계에 각인된 바이다. 그리고 월드컵, 촛불시위, 스크린 쿼터, 쌍방향적 인터넷관계망 등 우리의 강렬한 문화적 분출력은 한국을 역동적인 문화국가로 상잡게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민간문화는 지금 동아시아에 조심스럽게 '말걸기'와 '서로 되비쳐보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이 같은 민간의 자발적 연계고리를 통한 상호이해와 소통, 그것이 동북아 평화공존을 만드는 가장 단단한 사회지반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한류는 다시 기획되어야 한다. 동아시아라는 시공간을 거대한 문화시장이나 신자유주의의 하위체제로 재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동아시아의 하늘을 뒤덮은 칙칙한 역사의 장막을 활연히 벗어 젖히고 모두가 사는 평화공존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그 발랄한 민간주도의 문화파장을 동반과 상생의 문화기획으로 바꿔내야 하는 것이다.
'바이 코리아'의 궁색이냐, 만남이 곧 문화가 되는 아름다운 문화국가냐. 남북통일, 동북아 평화공존과 호혜경제, 그리하여 세계평화의 아름다운 미래상은 오늘의 국가적 선택, 그 분명한 지향에 달려 있다.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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