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중구난방(衆口難防)이 도를 넘고 있다.우리당 의원과 당선자들은 어떤 현안이 쟁점으로 떠오르면 각자 '자기 얘기'만 해대고 있다. 이들의 언행에서 원내 과반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진중함은 찾아 볼 수 없다. 자신의 의견개진이 여론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 지, 혹시 이로 인해 당 지도부와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을 지 등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다. 게다가 완전히 상반된 의견이 여과 없이 쏟아져도 이를 조율하고 통합할 당내 시스템이나 리더십도 아직 없다. 그래서 여당의 당론이 무엇인지, 관심 현안이 어떻게 처리될 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대표적 사례가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다. 최근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파문 등 현지 정정이 불안해지자 파병 재검토를 먼저 들고나온 쪽은 야당이 아닌 우리당 인사들이었다. 386 운동권과 재야출신 당선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파병재검토 또는 철회를 외쳤고, 김근태 전 원내대표까지 "포로학대는 미국이 주장하는 전쟁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며 가세했다. 급기야 12일에는 새로 선출된 천정배 원내대표가 "파병 대신 재정지원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밝혀 조만간 촛불시위를 재개키로 한 시민단체의 파병반대 움직임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 됐다.
반면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대부분 지도부의 입장은 여전히 신중하다. "현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한 뒤 국제적 약속 등을 고려해 최종 방침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파병원칙을 고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당 일각에는 파병 철회론을 외교적 현안에 대한 전술적 선택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국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야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파병의 부수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병 재검토나 철회를 주장하는 의원들은 3월 국회의 파병안 처리 당시 의원총회를 7차례나 열어 찬성 당론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 표를 던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당의 의석이 47석에 불과했던 그때나 과반 여당이 된 지금이나 자기 소신만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외교 문제에 대한 전술적 대응은 국정책임이 덜한 야당이 치고 나가고, 여당은 못이기는 척 따라가는 모습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지적이다.
언론 및 사법개혁, 국가보안법 개폐문제와 같은 민감한 쟁점을 둘러싼 혼선도 이에 못지않다. 정동영 의장과 문희상 당선자 등 실용파의 속도조절론과 신기남 의원 및 재야파 인사들의 개혁 드라이브 주장이 4·15 총선 이후 한 달째 결론없이 엇갈리고 있다. 하루빨리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할 경제정책 기조를 놓고서도 '성장이냐 개혁이냐'의 논란이 쳇바퀴를 돌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러 갈래의 이견을 해소할 당내 시스템이나 지도부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도부와 중진들에게 들려오는 대답은 "아직은 과도기이므로 굴러가다 보면 해법이 찾아질 것"이라는 낙관론 뿐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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