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의 '미운 정 고운 정'과 파바로티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이 함께 나올 수 있을까.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와 러시아 성가가 한데 어울릴 수 있을까. 극단 목화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작·연출 오태석)는 성과 속, 선과 악, 천상과 지상을 박치기 시킨다. 타인의 아픔에 눈 먼 이 시대의 개안(開眼) 수술을 위해서다.부모가 자식을 한강 다리 아래 버리는 비극적 시대에 '심청전' 또한 그로테스크해질 수밖에 없다. 몸 파는 소녀 47명은 빚을 갚을 길 없어 군산 앞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심한 화상에 얼굴을 가제로 친친 두른 농촌 청년 세명(강현식)은 돈을 벌기 위해 '인간 표적'을 자처한다. 스트레스 쌓인 사람들에게 공을 맞고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이다.
극단 목화판 '신심청전'은 그러나 곧이 곧대로 비극을 말하기 보다, 질펀한 웃음으로 눈물을 감싸 안음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세명이가 화재로 쓰러진 순간, 앰뷸런스 소리가 극장을 메우는데 이윽고 등장하는 장난감 자동차가 관객을 자지러지게 한다. 관객은 비참한 현실에 암담해 하다가도, 기지에 찬 흥겨운 무대에 박장대소 하게 되는 것이다. 뒤통수를 치는 반전, 세차게 가슴을 치는 감동을 함께 숨겨둔 마지막 장면까지 배우도 관객도 숨가쁘다.
그러나 주제는 인당수 깊은 심해에 묻혀 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다시 빠질 수 밖에 없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 '심청이는 …'의 전부는 아니다. 단순한 박스를 이용해 용왕의 컴퓨터 상황실, '인간 표적' 오락실, 홍등이 걸린 분장실로 전환하는 무대전환이 절묘하다.
황정민(춘자)이며 이수미(길자) 같은 빼어난 목화 여배우들의 진가를 맛보는 재미도 유별나다. 13명의 여배우(14년 전 초연은 성지루 등 남자 배우가 여장을 했다)가 각자 방에서 단장을 하는 장면은 이 극의 압권이다.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박하게 화장하는 우리시대 심청이는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빚 갚아줄 이를 찾기 위해 심청이들이 차례로 선상(船上) 기자회견장에 올라 구구절절한 사연을 읊을 때, 관객은 군산 앞바다의 거친 풍랑을 함께 맞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부모가 혹시 알아차릴까' 하여 얼굴을 자해하고 나타난 옥자(김혜영)의 마음을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암전이 되면 관객은 눈가를 훔치느라 바쁘다. 이 공감의 눈물이 우리시대 심청이들이 바라는 개안 아닐까. 30일까지 아룽구지극장.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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