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투사, 노동운동의 대부, 철의 노동자….' '붉은 머리띠'가 먼저 연상되는 단병호 당선자에게는 이런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8년 5개월 동안 무려 6번 구속에 5번의 수배생활을 했던 그의 삶은 노동운동의 역사 그 자체다.단 당선자가 투사의 길에 접어든 것은 1983년 동아건설 창동 공장에 취업하면서부터.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이 곳에 처음 노조를 만들어 초대 위원장을 지낸 뒤 89년 서울지하철 파업 때 '제3자 개입'으로 구속되면서 그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단 당선자는 90년대 전노협 의장에 취임, 학생 운동가들이 이끌던 노동운동에 현장 노동자 시대를 열었고, 99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된 뒤 강경투쟁 일변도라는 비판 속에서도 대정부 투쟁을 주도하며 민노총을 명실상부한 노동운동 전위대로 자리잡게 했다.
그리고 2004년. 20여년을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싸워왔던 그의 국회의원 당선은 한국 현대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즘 단 당선자는 전체 노동자의 53%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노동조합법, 산재 관련법,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법안 등에 산재해 있는 '독소조항'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지도 숙제다. 그가 국회 환경노동위를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려고 나섰기 때문"이라며 "현장 경험을 충분히 살려 탁상공론에 치우쳐 있는 노동정책을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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