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시인의 부음이 전해진 11일, 김흥수(85·사진) 화백은 병상을 딛고 일어나 개인전 계획을 밝혀 우리 문화 1세대들에 대한 감회를 더했다. 두 사람은 1919년 생 동갑내기다.김 화백이 1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관훈동 윤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연다. 1999년 가나화랑에서 드로잉전을 연 이후 개인전으로는 5년 만이다. "죽다 살아났습니다. 수술을 한꺼번에 세 차례나 받았지요. 개인전을 연다고 기자회견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2002년 말부터 척추 이상에 따른 하반신 마비 등으로 시달렸던 김 화백은 이날 지팡이도 짚지 않은 건강한 모습에, 목소리는 다소 낮아졌어도 여전한 열정의 달변이었다. "한동안 붓 들 힘도 없었어요. 그러다 지난해 가을 힘을 내 완성한 첫 작품이 '나를 찾아온 천사'입니다."
김 화백은 이번 개인전에 50호 1점을 포함해 1∼5호 소품 위주로 18점의 작품을 냈다. 강렬한 색채의 구사, 활달하고도 정제된 필선이 오히려 젊은 기운을 느끼게 한다. 여인의 누드와 기하학적 도형을 병치시켜 구상과 추상, 동양과 서양의 정신을 한 화폭에 담아내는 김 화백 특유의 '하모니즘(음양조형주의)' 회화 작품들이다. 김 화백은 "나이 먹으면서 기억력은 줄어도 감각은 오히려 살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각을 길러야만 다른 사람의 그림이 보인다. 화가가 기술적인 손재주만 있다면 자기 그림밖에 모르게 된다"며 "우리 화단의 병폐도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볼 줄 모르는 데서 생긴다"고 폐쇄적인 화단 분위기를 질타했다.
동석한 부인 장수현씨는 "요즘도 신문을 하도 꼼꼼히 읽어 시력 나빠진다고 나무라면 화백님은 '인텔리가 신문을 안 읽으면 어떻게 해!'라고 야단 친다"며 우스개처럼 말하기도 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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