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글자마다 뜻이 달라 익히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복잡하고 헷갈리는 한자를 쉽게, 재미있게 배우는 방법은 없을까.'고우영과 함께 하는 교육부 지정 상용한자 1800'은 만화가 고우영이 쓰고 그린 한자 만화다. 기본 한자 1,800자의 어원을 밝히고 관련 이야기를 소개하는가 하면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이야기 전개에는 손오공 관우 장비 제갈량 무대 노지심 임꺽정 일지매 등이 총출동했다.
열 권을 낼 계획인데 이번에 두 권을 먼저 출판했다. 1권은 한자 부수 214자를 소개하고, 2권은 한글 가∼교에 해당하는 한자를 수록했다.
'一'(한 일)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원시인이 사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마을로 돌아와 손짓을 해가며 사슴 한 마리가 있으니 함께 사냥하자고 하는데(언어, 문자가 없을 때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한다. 그는 화가 치밀어올라 들고 있던 막대기를 내팽개친다. 그 막대기가 땅 바닥에 던져진 모습이 바로 '一'자 였다. 작가의 설명. "어떤 물건이 가로로 놓인 모습에서 따온 것으로 '처음'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숫자 중 가장 작은 것으로 가로로 한 개를 놓아 숫자'1'을 표시했다."
'火'(불 화)와 관련해서는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을 끄집어 낸다. 양자강 적벽에 조조의 100만 대군이 진을 치고 있다. 배와 배를 연결하고 판자를 깔아 파도에도 끄떡하지 않는 연병장을 만들었다. 일전을 벼르는 손권―유비연합군은 그 모습에 기가 질린다. 연합군 사령관 주유와 제갈량은 작전을 생각한 뒤 그것을 손바닥에 붓으로 써서 펴보인다. 둘 다 '火'였다. 그렇게 작전을 정한 연합군은 불 화살을 퍼부었고 때마침 불어온 동남풍을 타고 불길은 조조 진영으로 확 번져나갔다.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저자는 말미에 이런 설명을 추가한다. "불꽃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
수호전의 양산박은 108 영웅이 사는 곳이다. 108명 가운데 한명인 이규는 힘이 세고 성질도 사납다. 어느 날 병사들이 양산박 경계 안으로 들어오자 이규는 "우리 땅에 오지 마라"며 고함을 지른다. 병사들이 "경계가 어딘지 몰라서 들어왔으니 선을 그어달라"고 했다. 이규는 바닥에 '田'(밭 전)을 긋고 그 아래 부분에 화살표(介)를 그리더니 "이곳부터가 우리 땅"이라고 말한다. '界'(지경 계)의 설명에는 이처럼 수호전과 이규가 동원됐다.
'廣'(넓은 광)은 가공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한다. 끝 없는 광야에 한 사람이 있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동이 났다. 절망하는 순간 멀리 광고판이 보였다. 마지막 힘을 다해 기어갔더니 '살고 싶으면 한자로 넓을 광자를 써보라'고 돼 있었다. 공부를 싫어한 그였지만 그대로 죽을 수는 없었기에 기억을 되살려 어렵게 글자를 쓴다. 그 순간 멀리서 구조의 헬리콥터가 날아왔다.
한 글자가 꼬리를 물고 연상 작용을 일으켜 한자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도서출판 관우 발행, 1·2권 각 1만원.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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