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에게 '여자'는 어떤 존재일까?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사진)는, 두 남자에 의해 재구성되는 선화라는 이름의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끊임없이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해왔던 홍 감독 특유의 '여성영화'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정점에 오른 것일까? 감독의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홍상수의 여인들'을 유형 분류해볼까 한다.먼저 홍상수의 여인들은 성적으로 꽤나 허용적이다. 속칭 '잘 준다'. 그들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거나 음탕하진 않지만, 남자의 요구에 가끔씩은 거부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할 때는 있어도 결국은 허락한다.
어쩌면 이것은 판타지일 수도 있다. 이때 남자의 사랑은 거의 집착에 가깝다. '강원도의 힘'의 백종학, '오! 수정'의 정보석, '생활의 발견'의 김상경이 여자들에게 보였던 모습은, 사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강박관념 같다. '여자는…'의 유지태와 김태우도 마찬가지. 그들은 7년 전의 여인을 떠올리고 기어코 그녀를 찾아가,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과거를 들춘다.
또한 홍상수의 여인들은 심란하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정신적으로 앓고 있다(김기덕 감독 영화의 '육체적으로 아픈 여자'와 묘한 대칭을 이룬다). '강원도의 힘'의 오윤홍, '오! 수정'의 이은주(그녀에겐 싸이코 오빠마저 있다)는 대표적인 캐릭터.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남자들의 유아성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홍상수의 남자들은 영화 속에서 여성으로부터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자주 듣는다는 사실이다. '돼지가…'의 소설가, '강원도…'의 대학 강사, '오! 수정'의 PD, '여자는…'의 미술 강사는 모두 그녀들의 선생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들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에게 칭얼대고 약간은 막무가내식으로 섹스(어떨 때는 오럴 섹스)를 요구한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들은 거부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며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섹스 신은 에로틱하다기보다는 민망하고 건조하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여인들에게서 보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백치미다. '돼지가…'의 이응경이나 '생활의 발견'의 예지원이 대표적인 캐릭터인데, 그녀들은 나른하거나 조금은 맹하다. 예지원이 남자들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백치미의 백미.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이기도 했다.
여기서 홍상수 감독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이 공유하는 가장 큰 특징을 얘기하자면, 그들에겐 어떠한 꿈도 없다는 사실이다.
반면 남자 캐릭터들에겐 언제나 목표가 있다. 그것은 한 여자와의 섹스일 때도 있고, 대학교수가 되는 것일 때도 있다. 하지만 여자들에겐 미래는커녕 현실 자체가 너무 버겁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일 수도 있겠지만, 막상 그 여자에게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여성에겐 꽤나 가혹한 일상의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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