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 비어만은 과거 동독에서 추방 당한 반체제 작가다. 1990년 8월, 통일 직전의 소용돌이 속에 그가 쓴 글은 강한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가 본 동독 국민은 급속한 통일에 환호하고 있었으나, 동독 좌파 예술가들은 이를 개탄하고 있었다. 이는 '희극'이었다. '변심하는 것만이 지조를 지키는 길이다…'비어만은 서독 좌파의 위선도 꼬집었다. 서독 좌파는 자신의 열망이 실현되지 못할 꿈이 되고 말았을 때, 자기도 모르게 기뻐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양심과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차라리 변심하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길이라는 것이다. '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인간의 동경은, 매 세대마다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비어만에 따르면, 모든 유토피아는 떠오르고 빛나다가 흐릿해져 결국은 사라진다. 그의 현실적 지조론을 북한 지배층에게 들려주고 싶다. 또한 남한의 극우세력에게도 같은 무게로 충고하고 싶다. 고착된 분단체제로 볼 때, 비어만 식의 역설은 역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실을 반영하는 모든 이념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총선 후 각 정당에서 정체성을 모색하고자 유행하는 이념논쟁의 무의미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좌우 이념의 스펙트럼이 좀더 자유롭고 융통성 있게 수용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해빙의 기운이 감지되고 전환시대의 깃발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남한에서는 뜬금 없는 대통령 탄핵결의와 총선이 의식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북한에서는 용천 폭발참사가 체제의 굳게 닫힌 문을 열게 만들었다. 낡은 의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전환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에 따르면, 변혁 잔치에 늦게 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벌을 받는다. 많은 고루한 정치인들이 2000년대에 낡아빠진 의식에 집착하다가 총선에서 정치생명을 잃었다.
발 빠르게 변신에 성공한 예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다. 그는 총선 기간에 미래지향적 대북정책을 줄곧 강조함으로써, 당의 낡고 부패한 이미지를 보수하고 끌어올렸다. 자신들은 '차떼기'로 부패를 일삼으면서, 햇볕정책을 '북한 퍼주기'로 매도하던 한나라당은 총선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선장을 교체하여 침몰을 면했다. 그는 총선 후 방북의사를 밝혔고, 따뜻한 대북정책을 펴겠다고도 약속했다.
열린우리당과의 대표회담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공동발전을 추진해 나가되, 대북 경제협력을 활성화 할 것'을 합의했다. 이제 참여정부와 각 정당이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하리라고 기대해도 좋을 모양이다. 겨레의 몸에 따뜻한 피가 돌고, 가슴에 희망이 부푸는 듯하다.
햇볕정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중요하다. 남북한이 함께 변하지 않는 한, 통일은 물론이고 관계개선조차 일정선을 넘을 수 없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의 89년 연설을 들어 보자. 그는 서독의 대규모 원조와 동독의 획기적인 정치개혁을 역설했다. "우리는 동독 정치경제의 근본적 개혁과 연결해서 광범위한 경제원조를 할 용의가 있다. 동독의 사회주의 통일당은 권력독점을 포기해야 한다. 또한 독립정당을 허용하고 자유선거를 해야 한다. 이런 조건 아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경제원조를 협의할 용의가 있다."
한반도와 독일은 민주주의 체험과 통일조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독일이 인도주의만으로 통일을 이룬 것은 아니다. 독일통일은 제도적 협력과 민주적 양보가 치열한 시소게임을 벌이면서 이룩한 성과다. 역대 남북 정치인의 인도주의적 주장대로라면, 우리도 벌써 통일이 되었어야 했다. 우리도 북한의 개혁개방과 인권에 대한 요구를 높여가는 대신, 적극적인 경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지금 같은 자세로 가다간 통일은 백년하청이다. 남북 모두 변심을 서두르자.
/박래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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