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은 행재정개혁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나카소네 수상에 이어 현재까지 행재정개혁의 화두는 그 내용과 방법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일본정치의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1980년대의 개혁은 행정제도의 개혁에서 시작해 민영화에 따른 재정개혁, 금융제도의 개혁 등 행정의 슬림화와 효율화를 목표로 하였다. 이에 비해 1996년 하시모토 정권 하에서 시작된 6대 개혁은 일본형 통치구조의 변화에 초점을 두었다.
여기서 6대 개혁이란 관료기구의 축소와 정치 리더십 확립을 위한 수상의 기능 강화를 골자로 한 행정개혁 재정적자의 삭감과 예산 편성의 개혁을 목표로 한 재정구조개혁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특히 건강보험과 연금의 개혁 규제완화와 민영화에 의한 경제 활성화를 추구하는 경제구조개혁 금융시스템개혁 교육개혁 등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예는 관료 주도에서 정치 주도를 지향한 2001년 정부조직개혁(성청·省廳 개혁)이다. 2001년 성청개혁의 중점적인 과제는 수상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의 리더십에 의한 하향식 정책결정의 형성에 있었다. 또한 2001년부터 기존의 1부22성청에서 1부12성청으로 재편 통합해 전후 최대의 관료기구개혁을 단행하였다. 국가공무원의 수에서도 10년간 25%를 삭감하기로 한 획기적인 안이 발표됐고, 지금까지 개편되지 않은 국가 행정기관 90개를 '독립행정법인'으로 효율화하기로 결정했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일본 관료기구는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도록 만든 동력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일본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관료기구는 규제와 권한을 유지함으로서 세계화와 개방화를 지연시키는 원인이 됐다. 더욱이 각 성청의 비대한 권한이나 예산은 정치가와 업계의 이해와 연결된 이른바 정·관·재(政官財)의 유착을 구조적으로 정착시키면서 일본 정치경제시스템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었다. 이 점에서 2001년 성청개혁은 메이지유신 이래 지속되어온 일본형 통치구조의 질적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1990년대 이후 개혁에서 통치구조의 변화라는 아젠다가 중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1990년대 버블 붕괴 후 장기불황에 따른 국민의 불만이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행정개혁의 역사를 살펴보면, 1960년대 제1차 행정개혁은 고도성장기였기때문에 심각한 갈등과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1980년대 제2차 행정개혁은 저성장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제의 퍼포먼스가 세계 제일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일본 국민은 자신감을 상실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불만은 새로운 일본의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되었다. 즉 주가 및 지가의 대폭적인 하락, 은행의 도산이라는 장기 불황 하에서 일본 국민의 위기감이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개혁에서 흔히 나타난 관료집단의 저항은 국민들의 강한 비판에 부딪치게 되었고, 이에 따른 관료기구 개혁도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1993년 자민당 단독정권이 붕괴돼 연립정권으로 교체되면서 여당과 야당과의 관계, 연립정권 내 정당간의 관계 등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1993년 이후 연립정권의 형성으로 인해 자민당은 '통치제도에서의 정치주도'로서의 행정개혁을 추구하려는 정당세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은 잠재적인 연립 파트너인 동시에 현실적인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자민당 단독 정부 시기와 달리 자민당은 정책목표의 독점적 결정권을 잃어버리고, 소수 정당들과도 타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중반 이후 행정개혁의 새로운 정책목표로써 비(非) 자민 정당들이 주장하는 '통치구조에서 정치 주도'라는 아젠다가 일본의 개혁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하시모토 수상에서 시작된 일본의 개혁이 과연 통치구조의 변화 즉 관료주도로부터 정치주도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가는 아직 알 수는 없다. 현재에도 관료기구를 중심으로 한 정·관·재의 유착구조는 일본 정치경제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료기구의 개혁에 따른 정·관 관계의 한 부분이 개선되었다고 해서 일본의 정치 경제가 변화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 일본이 수직적 관료 기구와 함께 공공사업이나 보조금으로 이권화한 정·관·재 유착구조의 폐해를 개혁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협찬:SK주식회사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 43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도쿄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논문 "일본형 금융시스템의 위기-부실채권처리 정책을 중심으로"(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24집 제3호, 2003년2월)
■개혁구호 홍수 日 국민들 "글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에서는 개혁의 목소리가 다시 넘쳐 나고 있다. 장기불황으로 침체된 국가를 재생시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몸부림이다.
자민-사회당의 '55년 체제'를 깨고 93년 혜성같이 등장한 호소카와 모리히로(일본신당) 총리는 '정치개혁'을 주창했다. 와신상담끝에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와의 연정으로 96년 권좌를 되찾은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도 행정개혁 등 6대 개혁을 내세웠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개혁은 정치적 단명(短命)과 심각한 경제 불황 등 주변 여건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집권2기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역시 개혁을 부르짖었다. 이름하여 '구조개혁'이다. 그는 모두 7개 부문의 개혁을 제시했는데 그 중 핵심은 우정(郵政)사업과 도로공단의 민영화이다. 우정사업의 민영화는 우편저금, 간이보험, 우편사업을 민영화하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경제재정자문위가 중간보고서를 제출했는데, 2007년부터 민영화를 본격 실시하게 돼 있다. 이에 앞서 우정성에서 총무성 직할로 개편됐던 우정청은 2002년 우정공사 관련 법안이 제정되며 2003년 4월 공사로 발족했다.
도로공단민영화는 관련 4개 공사의 민영화를 의미한다. 민영화추진위가 2002년 12월 최종보고서를 제출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정부와 여당이 이 안에 합의한 상태이다.
이들 개혁은 표면적으로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거대하면서도 비효율적이고 이권이 집중된 조직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들 부문의 개혁은 유착된 정관계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앞길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밖에 고이즈미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개혁으로는 '삼위일체' 지방재정개혁과 연금개혁 등을 들 수 있다. 삼위일체 개혁이란 국가가 지방에 지출하고 있는 국고보조부담금과 지방교부세교부금을 삭감하고, 대신 세원(稅源)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최근 보험금 미납으로 일본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연금개혁은 직장인의 후생연금과 공무원의 공제연금, 자영업자의 국민연금 등 직종마다 다른 연금을 일원화하는 것을 큰 그림으로 하고 있다.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는 부정적이다.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는 최근 "총리는 말로만 (개혁을) 한다고 하는 사기꾼 같다"며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고이즈미 개혁은 성공할 것인가. 개혁에 희망를 걸고 있는 일본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지켜보고 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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