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전용한 '안풍'(安風) 사건과 관련, 안기부가 평범한 가정주부의 명의를 도용, 금융계좌를 만들어 수백억원을 입출금한 사실이 10일 밝혀졌다. 이 자금은 대부분 입금 당일 즉시 인출됐으며 계좌 명의자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최근 이 돈이 외부 자금이라는 강삼재 의원 변호인측의 주장에 대해 "안풍 자금은 안기부에 배정된 예산을 은행 적금에 넣거나 CD 등을 매입해 발생한 이자 수입 및 미사용 예산"이라고 해명한 바 있어 안기부가 개인 명의까지 도용해가며 '투자'를 한 배경 및 실제 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10일 본보가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 등에 따르면 안기부는 1995년 10월∼96년 10월 15차례에 걸쳐 10억∼90억원씩 총 361억원을 당시 S은행 충무로1가 지점에 개설된 A(48·여·중구 신당동)씨 계좌에 입금한 뒤 즉시 출금했다.
검찰은 계좌추적 결과를 통해 이 가운데 90억원이 1억원짜리 수표 90매로 인출돼 96년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의 불법 선거자금으로 전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A씨측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런 계좌가 개설돼 있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A씨는 평범한 가정 주부일 뿐 친인척 등 주위에 안기부와 관련된 사람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실명제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며 "국가기관의 권력 앞에 금융기관이 개인 정보를 무단 제공한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안풍 사건의 피고인인 강삼재 의원의 변호인측은 "안기부 예산이었다면 개인 계좌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 돈은 안기부 예산이 아닌 외부 자금이 분명하며, 9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자금의 용처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측은 또 "굳이 개인 계좌가 필요했다면 많은 안기부 직원들 가운데서 명의를 빌렸어도 충분했을 것"이라며 "이처럼 전혀 관련이 없는 개인의 명의를 빌린 데는 당시 밝힐 수 없는 사유가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변호인측은 지난 7일 A씨 명의로 계좌가 개설될 당시 신청서 등 서류 일체와 입출금된 전표 및 수표 사본 등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 신청서를 안풍 사건 담당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지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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