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 파문 진화에 진땀을 흘리고 있는 조지 W 부시 정부의 관리들이 가장 많이 동원하는 단어가 '소수(a few of)'와 '비미국적(un-American)'이다. 5일 부시 대통령의 아랍권 방송 회견에서나 7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청문회 증언에서는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고문과 성학대의 가해자는 몇몇 일탈한 미군이고, 그들의 행위는 미국적 가치와 거리가 먼 것이라는 논리가 이어졌다.그러나 이라크인들을 발가벗겨 포개고, 밧줄에 묶어 끌고, 그들에게 자위행위를 강요했던 가학증은 결코 소수의 일탈만은 아니었다. 그 잔혹함의 이면에는 장교들의 은근한 종용이 있었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포로 관리 규정은 무시될 수 있다는 지도부의 독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구금 하에 있던 수감자 중 최소한 25명이 숨졌다는 미 육군의 자체 보고서는 "소수의 고립된 행위"라는 변명의 허구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럼스펠드 장관은 청문회에서 "현장 보고서를 흘려버리고 읽지 않았다"며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 주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2년 1월 테러 혐의자들은 제네바 협정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선언했던 그에게 정보를 캐기 위해 포로를 쥐어짜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지 모른다.
오로지 미국만이 옳다는 오만이 제네바 협정의 단 한 줄도 교육하지 않은 채 1,000여명의 미 예비역 헌병 부대원들을 이라크 교도소로 보낸 무모함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인권유린의 씨앗은 미국 지도자들의 다분히 '미국적인'인 오만 속에 '다수' 미군들에 의해 이라크 땅에서 자라고 있었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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