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3월 지구당을 폐지키로 법을 개정하고도 이를 어길 경우의 처벌조항을 마련하지 않아 지구당 폐지의 구속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9일 밝혀졌다. 이에 따라 각 정당은 사실상 지구당을 유지할 수 있게 돼 정치개혁의 최대 성과로 꼽혔던 지구당 폐지가 물건너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중앙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이날 “최근 편법으로 지구당을 유지하는 사례에 대해 단속에 나서려 했으나 처벌규정이 없어 단속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각 정당이 지구당을 유지하면서 조직적으로 당원을 관리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며 “단지 지구당이 선거운동 기구화할 경우에는 선거법상 사조직이나 유사기관으로 단속할 수 있으나 평시에는 실효성이 없다”며 “지구당 폐지를 전제로 선거 때 선거구마다 후보자 선거사무소와 별도로 정당사무소를 둘 수 있도록 했는데 지구당 폐지 조항이 사실상 무력화함으로써 말단 정당조직만 더 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7일 긴급 실무대책회의를 열어 정당법상 지구당이 법외단체라는 점을 들어 평상시에 지구당이 급여를 주는 인원을 활용하는 경우 등에 대해 기부행위 금지 조항에 따라 처벌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대책을 결론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관위는 17일 선관위원 전체회의를 열어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는 정당법 개정 당시 돈 선거와 조직선거의 원천인 지구당을 없애 고비용 정치구조를 혁파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현역의원들을 중심으로 지구당 유지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처벌규정을 누락한 것은 단순한 입법적 실수가 아니라 지구당 폐지를 임의규정으로 만들기 위해 이를 의도적으로 묵과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동당이 ‘지구당 폐지 불복종’ 운동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나선 데다 과반 여당인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도 지구당 부활론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지구당 유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양정대 기자 torch@hk.c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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