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역사존 미클스웨이트 등 지음·유경찬 옮김·을유문화사 발행·8,000원
1733년 새뮤얼 매든이라는 아일랜드의 작자가 '20세기 회고록'이라는 공상소설을 썼다. 프레더릭 1세와 조지 3세가 세운 왕립수산주식회사와 플랜테이션주식회사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매든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이제 기업은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됐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기업의 탄생으로 수백만 명이 고향을 떠나게 됐고, 많은 사람들의 먹고, 일하고, 노는 방식이 바뀌어갔다. 뉴욕 맨해튼에 마천루를 처음 세운 것도 기업이었고, 세계 각지에서 수없는 분쟁을 일으킨 주역도 기업이었다. 기업의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포드자동차의 모델 T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 프로세스 같은 낯선 상품의 대량생산을 통해 사회질서를 바꾼 뒤, 일상생활의 속도를 조절하는 새로운 행동양식을 강요했다.
우리는 이러한 기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히고 만다. 기업에 근무하든지 않든지 간에, 일상생활에서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도 그렇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회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왜 여기에서 일하고 있나. 여기서 일하면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대답할지 조금 막막해 하는 틈을 저자들은 헤집고 들어온다.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5000년에 이르는 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좀 더 잘 그리고 쉽게 대답할 수 있다고 속삭인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업의 목적에 대해 살펴보자. 이윤이 나지 않는 기업은 존재할 수가 없어 이윤 창출이 기업의 최대 목적인 것만큼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윤이 유일한 목적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2세기 피렌체 등에 '콤파니아(Compagnia)'라는 새로운 회사조직이 등장했다. 콤파니아라는 단어는 Cum(같이)과 Panis(나눈다)라는 라틴어의 합성어로, '빵을 같이 나누어 먹다'라는 뜻이다. 또 '기업은 사회 전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독일이나 일본식 자본주의와 '주주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된다'는 영미식 자본주의의 대립은 19세기 중반 이후 계속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20세기를 전후해 나타난 미국 대기업의 경우를 보자. '가난의 이점'이라는 책까지 썼던 카네기조차 82명의 관리인이 지키는 스코틀랜드 지방의 성과 64개 방이 있는 뉴욕의 맨션을 구입했을 정도여서 대기업들은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그런 반면 대기업들은 수백만명의 미국 보통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생활수준을 제공했으며, 거리의 행인들까지도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정부와 기업 중 어느 쪽이 더 힘이 센가에 대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아무리 허수아비 정부라고 해도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다투어서는 승산이 없다고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법무부와 심한 갈등을 겪는 동안에도 본사가 있는 시애틀을 떠나겠다고 위협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인 저자들은 기업이 어떻게 변해 왔고,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를 쉽게 요약했다. 저자들은 나폴레옹이 다시 태어난다면 기업에 투신하는 것이 정치가나 군인이 되는 것보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훨씬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기업을 제대로 알려면 역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이상호/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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