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에게오에겐자부로 지음·오에유카리 그림
위귀정 옮김·까치 발행
<나는 이윽고 요설(饒舌·수다스러운 말)의 단계를 넘어 문학적인 형식을 발견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면, 그 단계까지 소생했다면 그에게 속죄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인간을 향해 호소하기 위한 작품을 쓰고 싶다. 그것은 시든 소설이든 희곡이든 다음 일절로 시작될 것이다. "잘 사귀어볼 있을까요? 잘 인간끼리 하는 사랑입니다.">나는>
오에 겐자부로는 스물다섯 살 때 쓴 한 단편소설에서 그렇게 말한다. 난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심중을 이해할 것도 같다. 문학적인 형식에 대한 고민, 속죄의 의미, 인간을 향한 호소, 시든 소설이든 희곡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삶과 직결되는 것, 인간에 대한 진정한 구애….
한때 고문장(古文章)처럼 그의 이름이 나의 의식을 가로챈 적이 있었다. 한때 그의 소설 제목처럼 나 또한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고 흉내내 고백한 적이 있었다.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다 보면 김지하 시인이 그를 두고 말한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그만의 상상력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삶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느껴져 현기증이 날 정도의 감동에 젖곤 한다. 그의 소설은 문체뿐 아니라, 내용도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레이크, 예이츠, 디킨스, 단테 등 도저한 작가들을 소설 속에 녹여놨으니 읽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그 부담은 결코 머리가 아닌 가슴을 파고드는 눈물과도 같은 것이라, 그의 소설 속으로 빠져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에세이 '새로운 사람에게'를 읽으면서는 대작가의 위엄보다는 미래의 인간을 걱정하고,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노작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다. 더욱이 쉽게 읽히지 않는 그간의 글들과는 달리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서정적 에세이라 더할 수 없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지적 장애아인 맏아들 히카리를 가운데 두고 글을 쓴 겐자부로, 그림을 그린 아내 오에 유카리가 양편에 서 있는 가족사진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히카리가 태어나면서 삶과 문학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맞기도 했지만 이후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급류처럼 흘러간 그의 궤적이 이 에세이에서는 아주 천천히 흐르며 주변을 어른다.
아이와 젊은이 모두가 적의를 소멸시키고, 화해를 달성하는 '새로운 사람'이 되기를 이 책에서 바라고 있는 것처럼 나도 그의 말을 빌려 이렇게 호소하고 싶다. "잘 사귀어볼 수 있을까요? 잘 사귀어볼 수 있을까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딸이 하는 사랑입니다. 타인끼리, 이웃끼리, 아니 지구상의 모든 만물이 서로서로 하는 사랑입니다."
/김형준· 문학수첩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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