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지표상으론 작년 3·4분기에 바닥을 쳤다. 체감되지만 않을 뿐, 경기 자체는 분명 상승국면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2·4분기부터는 내수도 하락세를 멈춰 하반기엔 수출이든 내수든, 지표경기든 체감경기든, 회복궤도에 완전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실현가능성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3차 오일쇼크를 연상케하는 유가폭등, 다가오는 저금리시대의 종말, 서서히 그러나 분명해지고 있는 중국의 경기조절 등 대외환경이 반전되면서 국내 경기는 V자형도, U자형도 아닌 W자형의 '더블 딥' 우려를 맞고 있다. 쉽게 풀자면 경기가 살아나는 둥 마는 둥 하다 다시 고꾸라지는 모습이다.
최대 관건은 고유가
유가의 장래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리지만, 현재로선 비관론이 우세하다. 우선 유가상승의 직접적 원인인 중동정세불안이 쉽게 해소되기 힘들 것 같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 미군의 이라크 포로학대사건으로 중동지역의 반미(反美)행동이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유가하락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설령 중동문제가 평화롭게 일단락된다해도, 유가는 쉽게 내려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지난 10년간 부진의 늪에 빠져있던 일본경제가 살아난다면 세계석유시장의 큰 수요처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등 선진국수요 증가와 맞물려 고유가구조가 고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유가가 1분기 이상 지속된다면 국내 경제는 다시 내리막길로 접어들 공산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고유가→국내물가상승→구매력저하→소비위축→내수침체 장기화로 이어져 불황과 물가불안이 맞물리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까지 거론하고 있다.
저금리시대의 종말
유가상승으로 인플레 압력이 확산되면서 각국은 금리인상 준비에 들어갔다. 땅값 급등에 시달리고 있는 영국은 고유가까지 겹치자 작년말 이래 세번째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미국도 이르면 6월, 늦어도 9월까지는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6일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준금리를 2%에서 동결했지만, 트리세 총재는 "유가상승이 물가안정을 해칠 수 있으며 유로권 물가가 억제목표인 2%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물가보다는 과열억제가 목표지만 중국도 대출금리 인상을 심각히 고려중이다.
시장금리는 이미 윗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작년말 연 4.25%였던 미국국채 10년물 금리는 4월말 4.51%, 6일엔 4.60%까지 올랐다. 삼성선물 최완석 리서치팀장은 "수년간 지속되어온 글로벌 유동성이 후퇴하는 신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국제 금리상승기류는 외국인투자자의 매도추세와 국내 증시하락, 외환시장 불안 등 국내 금융시장에 큰 부담을 던져주고 있다.
중국변수와 국내경제
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기업경기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4월 90에서 5월 96으로 올라갔다. 중소기업(77→84)과 내수기업(79→86)도 개선됐다. 체감경기가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얘기지만, 그나마 고유가, 금리인상, 차이나 쇼크 등 대외변수 악화에 의해 꺾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로선 수출의 초호황도 장담할 수는 없다. 유가파동과 금리인상으로 세계경제 회복속도가 둔화하고, 중국이 본격적인 과열억제에 나선다면 수출증가율도 둔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하반기에도 지금처럼 수출이 잘 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고유가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고, 국제적 금리인상으로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수출마저 여의치 않다면 한국경제는 장기불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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