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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 성민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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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 성민엽씨

입력
2004.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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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를 찾았을 때, 성민엽(48)씨는 제1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고(故) 김현의 수상소감을 읽고 있었다. "시상식 때 아들이 대독하는 수상소감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지금 다시 읽어도 감동적인 명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성씨가 건네준 명함에는 '전형준'이라는 본명이 적혀 있다. '성민엽'이라는 필명은 그가 신춘문예에 평론을 투고할 때 지은 것이다. 대학시절 함께 하숙하던 선배에게 '성민섭'이라는 필명을 지어준 게 생각나, 그 중 한 글자를 바꿔 낸게 비평가의 이름이 됐다.

제15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성민엽씨는 팔봉(八峰) 김기진(1903∼1985)의 일생에 대해 생각해봤다고 했다. 식민지시대에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을 누구보다 앞서 펼쳐나갔지만 일제 말기의 총동원체제로 좌절했던 팔봉의 삶은, 성민엽씨의 연구분야와도 맞닿아 있었다.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한 그는 중국에서 1920년대 좌익문학운동이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됐는지, 그 운동이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온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1920, 30년대 팔봉이 추구했던 것이 나의 학문적 분야와 일치한다."

수상작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문학과지성사 발행)은 그가 16년 만에 펴내는 평론집이다. 두번째 비평집을 내고는 교통사고로 입원했다. 10개월 여 만에 퇴원했는데, "비평적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갑자기 의혹스럽게 느껴졌다"고 했다. 곧 1990년대로 넘어갔다. 이미 쓴 글을 책으로 묶어 낸다는 게 헛된 공명을 추구하는 게 아닌가 해서 원고가 쌓이고도 밀어놓았다. '90년대 문학'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다고 했다. 진보적인 문학운동을 하던 문인들의 전향선언에 괴로웠다.

텍스트에 공명하고 몰입했던 80년대 문학과 달리, 90년대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에는 쉽게 빠져들지 못했다. 그래서 전공인 중국문학 연구에 몰두했다.

비평적 글쓰기는 줄었지만, 많지 않은 글모음은 그러나 반성과 모색으로 이루어졌다. 책 두 권 분량을 훨씬 넘어섰을 때 "지난 시간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작업이 한국문학에 기여하는 몫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평론집을 냈다.

1989년에 쓰인 글부터 2003년의 비평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친 글 34편이 한 권으로 묶였다. 1부는 민족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 등 문학이론비평, 2부는 임철우 이승우 배수아 백민석 등 작가론으로 구성했다. "책으로 엮으니 사회와 역사의 변화, 문학의 변화 양상이 한눈에 보였다. 원로 문인으로부터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소중하게 품고 있는 문학의 본성에 대한 믿음을 찾아냈다. 모든 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무협소설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고급문학과 대중문학을 넘나드는 폭 넓은 문학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고급문학은 가치 있는 것, 대중문학은 가치 없는 것이라는 판단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범주의 차이일 뿐이다. 30, 40년대 짱아이링(張愛玲)이라는 중국 작가는 통속잡지에 작품을 쓰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랬던 그녀가 20세기 가장 중요한 중국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무협소설가 진륭(金庸)의 '영웅문'은 지난 세기 중국문학의 가장 뛰어난 성과로 평가된다. 이렇듯 대중적인 창작물을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파악하고 의미를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때 성씨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문학의 수준이 더 높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중국문학은 발전을 거듭해가는데, 우리문학은 왜소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작가들이 유행이나 추세에 쉽게 동조하고 안주하면서 문학세계의 폭이 좁아지고 편향이 나타나는 게 보였다."

그런 안타까움도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성민엽씨는 변하지 않는 문학의 힘을 신뢰한다. 오늘의 문학은 컴퓨터와 영상매체에 밀려 주변화 했지만 오히려 '변하지 않는' 본질적 속성은 강화했으며, 그럼으로써 문학이 삶과 시대에 대해 근본적 비판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 약 력

1956년 경남 거창 출생

서울대 중문과 졸업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서울대 중문과 교수·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소장

평론집 '지성과 실천' '문학의 빈곤'과 산문집 '고통의 언어 삶의 언어', 학술서 '현대 중국문학의 이해' '현대 중국의 리얼리즘 이론'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 등

■ 심사위원단 심사평

최근 문학비평이 부재하다는 비판적 평가와는 달리 1차 심사 대상에 오른 비평집이 38권이나 된다는 것은, 우리의 문학비평이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관심이 축소되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서 문학비평만이 풍요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양적 팽창이 질적 수준의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1차에서 다섯권의 비평집을 골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최종적으로 성민엽씨 등 3인의 비평집으로 논의가 좁혀졌다.

우리는 세 권의 비평집이 오늘의 한국비평의 탁월한 성과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어느 것이 수상작이 되어도 무방하다는 평가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동유럽의 붕궤와 함께 이데올로기의 대립체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문학에 대한 폭 넓은 이해에 도달한 결과 '미시권력의 추적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거대권력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권력구조의 개편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미시권력의 작동에 둔감'하다 고 생각하며 미시권력과 거시권력을 동시에 비춰보고자 하는 유연성을 보임으로써 전보다 발전된 비평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한국인의 삶과 문학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제들을 철저한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고, 오늘의 한국문학에서 무게 있는 작품들을 깊이 있게 분석함으로써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고자 한 비평적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의 비평가인 성민엽씨는 한국사회 전체가 겪은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학인들에게도 양자택일의 폭력적인 상황이 강요된 현실을 직시하며 '문학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진솔하게 제기하고, 고뇌에 찬 자신의 선택을 고백하고, 24명의 다양한 경향의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진정한 문학을 찾고 있다.

우리는 개인적인 선호와 관계없이 여러가지 객관적 사항들을 고려하며 진지한 논의를 거친 결과, 그 가운데 가장 젊은 성민엽씨를 금년도 수상자로 결정하는 데 전원 합의하였다. 그의 비평집은 지난 20년간 문학적 쟁점과 변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파악하게 하고, 서양적인 개념들을 동양적 언어로 이해하게 하며, 그 과정에서 겪고 있는 자신의 비평적 고민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성민엽씨의 수상을 축하하며 그의 비평이 위축되고 있는 한국문학을 독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김윤식 김병익 염무웅 김치수

■ 심사경위

우리 평론계는 1990년대 이후 몇 가지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특정 집단을 대변하던 이념적 평론의 침체, 문학연구와 현장비평의 경계선 상실, 한국문학 전공 평론가의 급격한 양적 팽창 등이 바로 그러한 변화의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 중에서도 최근 활동하기 시작한 소장 비평가들의 대다수가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예의 주시해야 할 현상이다. 우리 평론계가 외국문학 전공자에서 한국문학 전공자로 바뀌고 있는 것에는 한국현대문학의 발전을 말해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겠지만, 세계문학과의 대화를 통한 풍요로운 발전을 어렵게 만드는 부정적 측면도 분명히 있는 까닭이다. 더구나 이러한 변화가 고전적인 작품이 도외시 당하고, 대학에서 외국문학 전공학과들이 몰락하고,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화되는 일련의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우려할만한 사태라 할 수 있다.

제15회 '팔봉비평문학상'의 심사대상에 오른 38권의 평론집은 대부분이 소장 국문학 연구자들의 과외 비평활동을 보여주는 책들이었으며, 그래서 현장비평에 어울리는 감수성과 문체를 올바르게 구현하고 있는 책들은 많지 않았다. 김윤식 김병익 염무웅 김치수 네 분 심사위원들이 4월 23일의 1차 본심에서 5명의 후보자를 손쉽게 골라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4월 27일에 열린 2차 본심은 오생근의 '문학의 숲에서 느리게 걷기'와 성민엽의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선택의 어려움 때문에 약간의 시간이 소모되었다. 심사위원들은 깊이 있고 폭넓은 비평의 경지를 보여주는 책과, 한 시대의 지적 초상을 반성적으로 보여주는 책에 대해 심사위원 모두 어느 책이 수상작으로 결정되어도 좋다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시간의 재촉을 받으면서 마침내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성민엽씨의 비평집은 오랜 기간에 걸친 글을 모은 것이어서 당대성이 약하다는 흠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 '팔봉비평문학상'을 젊게 만들어보는 것이 어떨까요?"라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고, 다른 분들은 그 말을 기다려서 무거운 짐을 재빨리 벗었다.

/홍정선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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