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사이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로 뒤바뀐 정도라면 뽕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라 할 만하다. 서럽던 소수파가 국회의장과 주요 상임위원장까지 차지할 과반다수가 된 17대 국회에서 아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의원들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그들대로, 수 십년 보수주류를 누려 온 한나라당은 반대의 다른 감회로, 그리고 민주당은 또 다른 울분과 감상에 젖을 것이다. 대통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며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였던 다수 야당은 여론의 거센 파고에 자신들의 자업자득을 통탄해야 했지만 그 결과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것이다.■ 옛날 중국의 북방 요새 마을에 점을 치던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말이 국경을 넘어 이웃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위로했지만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태연했다. 몇 달 후 그 말은 준마를 한 마리 데리고 돌아왔고, 사람들은 이번엔 이를 축하했다. 그래도 노인은 기뻐하지 않았고,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여전히 태연했다. 이듬 해 전쟁이 나자 마을의 젊은이들은 모두 나가 싸우다 죽었지만 절름발이가 된 그의 아들은 혼자 무사했다. 세상만사는 예측할 수가 없고, 그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모두 덧없다는, 새옹지마의 고사이다.
■ 선거에서 처절하게 몰락한 민주당 사람들이 며칠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인생만사가 새옹지마"라며 이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고초와 영화를 모두 겪었던 김 전 대통령이고 보니 이 말이 그저 빈말로 들리지는 않는다. "인생의 패배자는 포기한 사람"이라며 고통이 새 출발의 계기임을 깨우친 말도 새삼 교훈적이다.
그의 언급은 민주당도 재기의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격려였겠다. 하지만 그 자리의 그들이 새옹지마식의 행(幸)과 복(福)을 다시 기대하게 됐을지는 의문이다.
■ 정치가 도전을 통해 앞서 이끌고, 만드는 것이라면 여기엔 새옹지마의 미래와 가능성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새옹지마에서 받는 뉘앙스는 희망과 기대의 종류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허무와 무의미 쪽에 더 가깝다. 새옹지마의 행과 불행은 돌고 돌지만 그 연관성은 없고, 이유도 모른 채이다. 어젠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김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들에게도 새옹지마를 말했다면 그 의미와 교훈은 더 선명하고 재미있었을 것 같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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