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의 지적 재산권 전략이 미국식의 적극 공격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후지쓰(富士通)가 삼성SDI를 상대로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런 공세의 대표적 사례다.
일본 소니와 미국 코닥의 디지털카메라 맞소송, 일본 르네상스테크놀러지의 대만 남아과기(南亞科技) 상대 DRAM 소송, 소니의 중국 BYD 상대 리튬이온 전지 소송, 일본 에자이의 이스라엘 TPI 상대 항(抗)궤양제 소송 등 일본 기업이 제소에 나선 국제 특허 소송이 최근 부쩍 늘었다.
1980∼90년대 특허의 중요성을 등한시했다가 PC 기본소프트,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 기업들의 봇물 제소에 시달리고 시장과 로열티를 빼앗겼던 일본 기업들이 그 동안 쌓아올린 특허를 무기로 대대적 반격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적재산권 관련 분쟁이 발생해도 비공식 조정을 통한 타협을 중시해온 일본 기업들끼리도 이제는 소송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지적재산권 싸움의 중심 무대를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로 일본 기업들의 공격은 거세다.
지적재산권을 육성하고 방위하기 위한 나라 전체의 제도와 환경 정비도 활발하다.
일본 정부는 2002년 지적재산기본법을 제정한 데 이어 2003년 '지적재산 입국(立國)'을 내걸고 지적재산 전략본부를 설치해 산관학 공동연구를 통한 특허개발과 특허심사의 신속화 등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각 유관 기관들도 일본 기업의 특허와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삼성SDI의 PDP 제품에 대한 통관보류처럼 일본 세관이 특허분쟁과 관련한 일본 기업의 신청을 받아들여 사실상의 수입금지인 통관보류 조치를 취한 사례가 2003년에만 22건에 달한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본 기업에 대해 타사 제품을 탑재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권유해온 인텔 일본법인, 유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특허침해 제소를 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맺어온 마이크로소프트 일본법인에 대해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다.
경제산업성은 해외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정부 보조·위탁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해 기업비밀관리규격의 취득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특허분쟁 등을 전문으로 다룰 지적재산 고등재판소도 2005년 창설될 예정이어서 국제 특허소송에 대한 법리 발전과 축적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UFJ은행이 지난 3월 처음으로 건설회사의 실용신안권을 담보로 2억 엔의 대출을 제공하고 미즈호은행이 기업 보유 저작권을 담보로 20억 엔 규모의 수익증권을 발행하는 등 금융기관의 지적재산권 관련 서비스도 본격화했다.
지난 4월부터 독립법인화해 경쟁원리가 도입된 국립대학들은 특허를 논문과 동등하게 교수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평가제도 도입도 서두르고 있다.
지난 1월 청색발광다이오드(LED)를 발명한 사원에게 특허 양도 대가로 기업이 200억 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이후 사내발명 대가를 청구하는 소송도 줄을 이어 일본 기업들은 내부적으로도 지적재산권 관리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는 형편이다.
이 같은 일본 기업들의 특허 지키기를 위한 공세는 반도체에 이어 디지털 가전 분야에서 일본을 급속히 따라잡고 있는 자연히 한국, 대만, 중국 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1980년대 일본 기업의 맹추격을 겁낸 미국 기업은 기술을 지적재산권으로 굳히는 전략을 택했다"며 "선발주자 미국과 따라붙는 아시아세 사이에 끼인 상태인 일본 기업이 지적재산권 전략에 눈 뜨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액정패널 합작 생산에 합의한 소니는 지난 1월 경제산업성이 주도하는 관민 차세대 액정패널(LCD) 개발 프로젝트에서 탈퇴했다. 소니를 통해 삼성으로 차세대 기술이 넘어갈 것을 우려하는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
주말 일본과 한국의 공항에는 한국 기업에 기술지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자사 전현직 사원을 적발하려는 일본 기업의 '감시조'가 몰린다는 것은 일본의 한국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얘기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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