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와 이병주를 좋아하던 문학청년이 오른쪽 눈을 크게 다친 것은 1980년 5월, 최루탄 매캐하던 거리에서였다. 당시 그 청년에게는 낙담과 과격, 두 가지 길 중의 하나만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 길들을 가지 않았다.한나라당 박형준 당선자의 오른쪽 눈에 비치는 세상은 여전히 흐릿하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균형있게, 그리고 또렷하게 세상을 봐왔다. 한걸음 떨어져 세상을 관조했고 과도한 자기확신을 버리라고 늘 주문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도 그는 당시 학술운동의 주류였던 주체사상과 마르크시즘(Marxism)에 대한 비판쪽에 섰다. '다원적 참여민주주의론'을 주창하고, 노동 계급론 대신 '지식근로자' 개념을 외쳤을 때 개량주의자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당당했다.
91년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IT자동화에 관한 것이었다. 마르크스를 벗어나 세계화 정보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었다. 그의 주장은 지금 움직일 수 없는 대세가 됐고, 그때 그를 비판하던 인사들은 모른 척 그의 논리를 좇고 있다.
그는 한나라당내에서 여기저기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의 받는 인기 있는 신인이다. 벌써 개혁파의 브레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유려한 언변과 정리된 이론때문만은 아니다. 한 걸음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감 있는 그의 눈이 있어서다. 그는 이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라는 역사적 기억을 뛰어넘어 국가 경영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에 입성한 그가 펼치는 주장의 요체는 한나라당의 체질 개선이다. 방법은 3자 연합론이다. "박근혜 리더십, 개혁그룹, 전문가그룹이 연합하면 불임정당 한나라당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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