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각종 개혁입법을 추진, 정치권은 물론 관계와 재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불붙었다. 1950년대 이후 현실정치에서 배제돼온 좌파(左派)가 이제는 사회적 발언권을 얻어 제도권 내에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정계에선 이미 대립각이 형성됐다. 열린우리당은 민노당이 내놓은 부유세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 고금리제한법 등을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중도개혁을 표방한 우리당은 민노당의 발흥으로 자칫 정치권이 보·혁 양분구도로 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우리당과의 양강구도를 선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재계는 좌파의 도전에 대해 본격적인 응전(應戰)을 준비하고 있다. 부유세법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선 적극적인 반대논리를 개발했다. 정치권에서 민노당에 맞설 친 기업적인 전위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마저 제기된다. 4일 양측의 상견례는 한판 승부를 앞둔 전초전이나 다름없다.
정부도 관계설정에 부심하고 있다. 노동·환경·산자·농림부 등 부처는 민노당의 각종 공약 검토에 여념이 없다.
민노당의 의석은 10석이지만, 정책은 민주노총과 전농 등 전국단위 대중조직과 진성당원 6만여명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민노당의 법안들을 소수파의 목소리내기로 치부할 수 없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 부유세법
민노당의 부유세법안을 놓고 이중과세와 국부유출 논란이 빚어지는 등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민노당의 법안은 순자산(총자산-부채) 30억원 이상인 자산가 5만여 명에게 1∼3%의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연간 11조원의 세수를 확보해 장기적으로 무상교육·무상의료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게 골자다. 비(非)노동 소득에 사회적 부담(세금)을 부과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민노당 정책기조의 핵심으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 주장과 함께 민노당이 내놓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안이다. 이념논쟁으로까지 번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핵심 쟁점은 이중과세 여부다. 자유기업원측은 "자산에 대해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부유세까지 거론하는 것은 중복과세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비판한다. 반면 참여연대 조세팀장을 지낸 윤종훈 회계사는 "부유세는 순자산에 부과하는 것이어서 재산세와 달리 소득세의 일부이며, 이중과세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징수의 실효성도 논란거리다. 전경련측은 "정확한 자산평가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며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민노당측은 그러나 "자산평가의 불균일성 문제는 세제 전반의 문제"라며 "평가방식도 합리화하는 추세여서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이 밖에 자본의 해외유출, 외국인의 투자 위축 우려도 나오고 있고, 서유럽 국가들이 부유세를 폐지하는 추세라는 점도 공방의 대상이다.
현재로서는 부유세가 국회에서 도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상속·증여세에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해 50∼60%의 세금을 물리는 등 사실상 부유세 기능을 하고 있다"(열린우리당 정세균 정책위의장), "부유세는 이중과세 금지 원칙에 어긋나고 현실성도 없는 접근"(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이라는 게 여야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국회 논의과정에서 공평과세와 탈세 방지, 정확한 세원 포착 등의 측면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양정대기자
■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민노당 관계자들은 입법 취지가 왜곡된 대표적인 법률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꼽는다. 세입자가 아니라 건물주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란 것이다. 부유세법안이 이념지향적인 입법활동이라면,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민노당이 민생에 파고들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는 법안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경제활동의 양상이 달라진 것을 모르고, 구시대적인 착상으로 마련한 법안"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개정안은 환산보증금제 폐지로 비 주거용 건물 전체 세입자 보호 점포 수선비·개조비 상환 청구권 명시 임대차 분쟁조정위 설치 임대료 인상률 연 10% 미만으로 제한하는 것 등이 골자다.
민노당 이선근 민생보호단장은 "기상천외한 환산보증금 개념을 적용해 세입자 대부분을 보호망 밖으로 밀어낸 것이 현행법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환산보증금은 '월 임대료갽100+임대보증금'으로 구한 값. 각 지역별로 설정된 기준(서울 2억4,000만원 등)을 넘을 경우 보호 대상으로 보지 않는 규정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세입자를 무조건 약자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에 모아진다. 많은 중산층이 임대료 수입을 통해 소득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측은 "등급별로 임대료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법을 만들었는데 세입자 모두를 보호대상으로 하자는 거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역시 "환산보증금제의 경우 보호 대상 범위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민노당은 더욱이 '현행법 발효 이전에 체결된 임대차 계약 당사자까지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법 소급 시비까지 일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임대료 인상률 규제는 당사자 간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임차인=약자, 건물주=강자라는 도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일부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다. 이 의원은 "임대료 인상률 제한은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 고금리 제한법
민노당이 제정을 추진중인 고금리제한법은 모든 금전 거래에 대해 이자율 상한선을 연간 25%로 낮추는 내용이 골자다. 현행 대부업법은 업자가 3,000만원을 초과해 대출할 경우 이자율 제한이 없고 3,000만원 이하일 때도 66%나 된다.
민노당은 또 여신금융기관의 대부업 금지 금융 이용자 일반으로 보호 대상 확대 법정 최고이율 초과 계약으로 인한 피해 구제 등도 명시하기로 했다.
최근 들어 가계 부채가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17대 국회에서도 고금리제한법이 제정되기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이미 최고이율을 40%로 낮추는 내용의 입법안은 16대 때도 제안됐다가 폐기된 바 있다.
국회 재경위는 지난해 10월 청원심사소위(위원장 김정부 의원)에서 "현행 이자율 상한이 66%인데 40%로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금리 통제"라며 본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고리채의 부작용은 부정할 수 없지만 시장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가뜩이나 어려운 카드업체의 도산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이번에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모두 고금리제한법 제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우리당 정책위 관계자는 대뜸 "민노당이 시장경제를 표방하지 않는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고금리 대책으로 법은 이미 만들어 놓았는데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배치되는 새 법을 만들 수 있느냐"고 잘라 말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금리는 개인의 신용도와 자금의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지 인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민노당 안대로 하면 자금이 말라붙어 정작 필요한 사람이 돈을 쓰지 못하거나 불법적인 자금시장이 조성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고리채 광고라도 제한하는 최소한의 입법은 필요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명근 변호사는 "젊은 세대가 급속도로 사채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면서 "광고에 금리를 확실히 표시하고 경고 문구를 넣도록 하는 등의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범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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