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엄마. 이 바지 좀 봐. 새 옷 같이 말끔한데 4,000원밖에 안 하네." "어머나. 이거 내버린 나뭇가지로 만든 건데도 예술작품 같아. 거실에 걸어 놓으면 딱 좋겠어." 4일 오후 강북구 미아8동 주민자치센터 지하는 주부와 아이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모두 옷걸이에 걸린 옷 보랴, 장신구와 장식품이 놓여있는 진열대 돌아보랴 정신이 없다. 그러면서 가격표에 적혀 있는 가격이 정말 맞는 것인지 묻고 또 묻는다. '질이 너무 좋은데도 가격은 너무 싸다'는 게 한결 같은 반응.
최초의 재활용·재생 전문 가게
국내 첫 재생전문 가게 '풀빛 살림터'(이하 살림터)가 문을 연 것은 지난달 26일.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1999년부터 녹색가게 운동을 펼쳐 온 '녹색 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 운영하는 살림터는 다른 재활용품 가게와는 큰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재활용품 가게가 쓰던 물건을 가지고 와서 다른 물건과 교환하거나 구입하는 데 비해 이곳은 물건의 교환과 구입은 물론 고장나거나 망가진 것들을 새 것마냥 말끔히 고쳐 쓸 수 있다. 이곳에는 옷 수선을 위해 미싱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수선기구가 갖춰져 있다.
살림터 운영자 이소연씨는 "녹색가게를 찾는 많은 이용자들이 작은 고장 때문에 버려야 하는 물건들이 많은데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온다"며 "재생 전문가가 고장난 것을 직접 고쳐주며 원하는 사람은 직접 수선 기구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살림터의 새로운 운영 방식에 대해 주민들은 높은 점수를 준다. 김옥경(35·여)씨는 "나사 하나 빠졌는데도 못쓰고 버릴 때도 있었어요. 옷 수선 하려면 아이 둘 데리고 30분 넘게 버스 타고 가서 맡겨야 했으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죠"라며 "이젠 무조건 여기로 가져오면 해결된다고 하니 앓던 이 빠진 기분"이라고 했다.
또 살림터에서는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서양화가와 비즈공예 전문가가 버려진 나뭇가지나 폐품으로 만든 장식품도 팔고 있다. "쓸모 없이 여겨지는 폐품들도 얼마든지 멋진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요." 30년 넘게 서양화를 그려온 화가 이종선(56)씨는 "자원 재활용과 예술에 대한 주민들의 시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주민들이 만드는 희망공간
살림터 측은 수선을 끝낸 재활용품을 인근 공부방과 노인정으로 보낼 계획이다. 녹색 모임의 정외영 회장은 "버려진 책상과 탁자는 고쳐서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폐품을 활용한 장식품은 노인정에 기증하겠다"며 "인근 유치원들을 네트워크로 연결, 고장나거나 낡은 장난감, 놀이기구를 수리해 서로 교환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풀빛 살림터는 올 7월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치센터에 '리폼강좌'를 연다. 주민 스스로가 직접 재생할 수 있도록 물가에 데려가는 것 대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겠다는 것.
이소연씨는 "새 것이든 낡은 것이든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얼마든지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살림터가 생활 속에서 재활용, 재생을 실천하는 '희망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풀빛살림터 (02)983―6678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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