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고진화 당선자는 운동권이었다. 그것도 골수였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삼민투위원장을 지냈다.1985년엔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을 주도하다 2년6개월간 감방 생활도 했다. 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 특사로 풀려난 그는 다시 '전민련'(89년), '새정치와 개혁을 위한 민주연합'(91년), '민주개혁정치모임'(92∼94년) 등을 거치며 재야 운동에 주력했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은 2000년이었다. 정태근, 박종운, 오경훈 등 다른 386세대와 함께 한 행보였다. "한국정치발전을 위해 수구보수적 야당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다소 거창한 명분과 함께였다.
4년이 흐른 지금. 한나라당은 386이 아닌 외부 환경과 민의에 의해 변화의 기로로 내몰렸다. 그는 두 번의 도전 끝에 배지를 달았다.
그리고 함께 어깨를 걸었던 인사들은 그와는 반대편에 서서 당당히 사회의 주류로 부상했다. 고 당선자의 위치는 혼란스러워 보인다.
그는 "변화를 공언하고 들어왔건만 변화를 추동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토로했다. 하지만 혼란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운동했을 당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들이댈 세상은 더 이상 아니다"며 "방법론이 다를 뿐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선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곳에서 앞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는다고 했다. "양쪽이 수렴하는 지점에서 통합의 정치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야당 변화를 추동하겠다는 따위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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