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5월4일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1993년 스위스 톨슈나에서 몰(沒). 헵번의 어머니는 네덜란드 귀족이었고 아버지는 영국인 은행가였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를 따라 네덜란드로 이주한 헵번은 나치 치하의 궁핍 속에서 성장기를 보낸 뒤 런던으로 건너가 발레를 배우며 단역 배우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시절 헵번은 프랑스 소설가 콜레트의 눈에 띄는 결정적 행운을 얻었다. 콜레트는 자신의 소설 '지지'가 각색돼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게 되자 헵번이 주인공 역을 맡도록 주선했고, 이 작품을 보며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영화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헵번을 '로마의 휴일'(1953) 주인공 역에 발탁했다.'로마의 휴일'에서 한 신문기자와 짧은 사랑에 빠지게 된 공주 역을 맡은 헵번은 이 역으로 그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그 뒤 그녀의 영화 인생은 순풍에 돛 단 듯 풀려나갔다. 돈 많은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뉴욕 상류 사회로의 진입을 꿈꾸는 여성 역을 맡은 '티파니에서 아침을'(1962)이나, 언어학자의 훈육을 통해 귀부인 말투와 예절을 익히게 되는 런던의 꽃팔이 소녀 역을 맡은 '마이 페어 레이디'(1964)를 통해, 헵번은 영화 팬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그녀는 이내 '현대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헵번이 직접 부른 주제가 '문 리버'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
헵번은 결별로 끝난 두 번의 결혼을 통해서 아들 하나씩을 얻었다. 두 번째 남편은 이탈리아 심리학자 안드레아 마리오 도티였다. 만년의 헵번은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임명돼 에티오피아, 수단, 방글라데시, 소말리아 같은 제3세계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그녀의 유니세프 활동은 결장암 진단을 받은 1991년까지 계속됐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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