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차게 먹어야 맛 있는 음식과 같다"는 1편의 대사를 빌린다면, '킬 빌(Kill Bill)' 2편은 차갑게 내놓은 맛난 메인 메뉴에 이어지는 변두리 패밀리 레스토랑 디저트다. 가슴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던 1편의 '복수의 맛'을 기억한다면 참지 못하고 냉큼 속편을 향해 입을 벌리겠지만, 마카로니 웨스턴풍으로 꾸민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중국차는 향기도 여운도 기대만 못하다. 21세기식 영화문법의 창조자이자, 포스트모던식 짜깁기 영화 미학의 총아인 쿠엔틴 타란티노는 스스로 쌓은 전작의 명성을 넘지 못했다.1편은 꼬마들의 총싸움을 그린 낸시 시나트라의 '뱅 뱅'으로 시작, 달콤하며 애상적인 엔카 '살육의 꽃' 등 복수의 주제와 맞물리게 틀어놓은 사운드트랙만으로도 성찬이었다. 일본액션과 홍콩무협영화의 명장면을 애교 있게 베끼는가 하면, 애니메이션을 끼워넣는 재치를 보였고, 우마 서먼이 '죽음의 88회'와 일당백으로 맞붙는 청엽정 전투, 눈 내리는 밤 정원에서의 결투는 한 편의 시라 해도 좋았다. 경박함과 잔인함이 두드러지긴 했어도 그것이야말로 '헤모글로빈의 시인' 타란티노를 확인시켜 주는 인장이 아니던가.
영화는 1편의 5장에 이어 6장 '예배당의 학살'로 문을 연다. 결혼식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는 만삭의 킬러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 4년 전인 1편의 상황으로 돌아온다. 더 브라이드가 새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조직에서 이탈했다가 애인이자 두목인 빌에게 총을 맞았던 상황을 되짚는다. 감독은 만삭의 킬러와 그를 죽이러 온 옛 애인 빌(데이비드 캐러딘)로 하여금 오랜 동안 해후하게 만든다. 사막지대인 엘파소의 한 교회를 평화롭게 비추는 카메라는 잠시 뒤에 있을 '학살'을 전혀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
일본도로 머리 윗부분을 날려버린 1편의 잔인함과 결별하겠다는 뜻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2편은 1편의 일본도에 맞먹는 '오지심장파열술' 권법을 선보인다. 빌의 이복동생에게 총탄을 맞고 생매장을 당하는 위기에도, 애꾸눈 엘에게 죽음 당할 뻔한 순간에도 급소를 짚어 심장을 터지게 하는 이 권법은 신기를 발휘한다. 눈알을 빼서 짓밟는 등 '헤모글로빈의 시인' 기질은 변함 없지만, 긴장도는 확연히 떨어진다. 한 터럭의 양심도 보여주지 않는데도 우리가 타란티노에 빠져드는 것은 아찔한 롤러코스터 같은 '형식의 파노라마' 덕분이었다. 1편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며 개봉 첫 주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1위를 했지만, 우리가 열광했던 타란티노는 더 이상 없다. 14일 개봉. 18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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