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주둔 미·영 군인들이 이라크인 수감자들을 학대하는 사진과 증언이 잇달라 공개되면서 이 문제가 새로운 전쟁 쟁점으로 부각하고 있다. 특히 미·영 연합군 정보장교들이 정보를 캐는 수단으로 고문을 장려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내외의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즉각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 엄중 처벌을 약속하며 파문 진화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면서 전쟁 회의론에 더욱 불을 당길 것으로 전망된다.미 정보 장교들의 학대 지시
시사잡지 '뉴욕커'는 최신호(10일자)에서 이 사건을 조사 중인 안토니오 태구바 소장의 보고서를 인용 "미 육군 장교들과 미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교도소 헌병들에게 수감자들로부터 유리한 증언을 끌어낼 수 있도록 육체적, 정신적 조건들을 만들도록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성적 모욕과 고문이 자행된 바그다드 인근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 시절 고문 및 처형으로 악명 높았던 곳이다.
이 잡지의 세이무어 허쉬 기자는 수감자 학대에 관여한 미 예비역 출신 헌병 6명 중 1명인 아이반 프레데릭이 1월 집에 보낸 일기장 일부를 공개, "군 정보장교들은 포로 신문에 가담한 헌병들에게 '업무를 잘 수행했다'고 격려했다"며 "프레데렉은 교도소의 참상을 상관에 보고했으나 그로부터 '신경쓰지 말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적었다"고 밝혔다.
태구바 소장은 정직처분을 받은 교도소장 재니스 카핀스키 준장 외에 최소한 2명의 장교를 처벌할 것을 건의, 가혹 행위의 책임이 고위 장교들에게 있음을 시사했다.
카핀스키 준장은 포로 학대가 벌어졌던 감방 구역은 육군 정보장교들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 곳이라고 말해 정보당국에 의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포로 고문이 자행됐음을 시사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밝혔다.
학대 실태
뉴요커가 인용한 태쿠바 소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12월 사이 한 포로에 대한 성폭행을 비롯해 포로들을 상대로 "가학적이고 노골적이며 외설적인" 학대행위가 있었다.
보고서는 "화학전구를 깨뜨려 수감자들의 머리 위로 화학물질 붓기, 화학전구와 빗자루 손잡이를 항문에 넣어 모욕주기, 남자 수감자를 강간하겠다고 협박하기, 군용견을 풀어 협박하기 등 가혹 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진화나선 부시와 블레어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이라크 포로들이 그런 대우를 받은 데 대해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며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를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블레어 총리도 1일 미러지에 보도된 영국군의 가혹행위와 관련, BBC방송 인터뷰에서 "전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는 이런 일을 제거하러 갔지 자행하러 간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 분노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국제앰네스트(AI)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번 사건은 전쟁포로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금지한 제네바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본격적으로 문제삼고 나섰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모든 피구금자는 국제인권법의 조항에 근거해 보호 받아야 한다"며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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