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프랑스의 쇠라(Seurat)는 캔버스에 점을 찍어 형상과 색채를 표현한 점묘주의(분할주의) 화가로 유명하다. 수학에서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이 선들이 모여 면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쇠라가 화폭에 찍은 점들은 모여서 다양한 사물과 풍경을 만들어 낸다. 쇠라가 미세한 필촉으로 찍은 원색의 작은 점들은 망막 위에서 혼합돼 인간의 눈에는 중간색으로 감지된다.쇠라가 점묘주의를 추구하던 시기에 수학자 칸토어(Cantor)는 '집합론'을 발표해 현대수학의 초석을 닦았다. 원소들의 모임인 집합(set)을 연구하는 집합론은 점의 집합으로 그림을 그린 쇠라의 화풍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20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된 현대수학의 분야 중 하나가 토폴로지(topology)라고 부르는 위상수학이다. 현대수학의 가장 큰 특징은 추상성으로, 토폴로지는 그 중에서도 고도로 추상화한 분야다. 토폴로지에서는 다루는 대상을 시각화해 나타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도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분야이다. 그래서 토폴로지의 별명은 이를 비슷하게 발음한 '또모르지'다.
위상수학에서는 연속성이나 연결 상태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상자 모양의 정육면체와 구(球)는 위상적으로 동일하다. 찰흙이나 고무와 같이 신축성 있는 재료로 된 정육면체가 있다면 손쉽게 구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카드의 네 가지 무늬 ◇♡♤♣는 위상적으로 모두 같다.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단일폐곡선(하나로 연결된 닫힌 선)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화가 마티스(Matisse)는 형태를 단순화해 나타내는 각별한 재주를 지녔다. 마티스는 복잡하고 정교한 인간의 모습을 위상적 변화를 통해 단순화시켜 그림으로 표현했다. 마티스가 위상수학을 공부하고 이를 그림에 의도적으로 반영하지는 않았지만, 위상수학이 연구될 무렵에 그려진 마티스의 그림에 추상화, 단순화라는 위상수학의 아이디어가 들어있음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수학은 인간 사고의 산물이자 결정체이므로 각 시대에 출현한 수학에는 당시를 살아간 인간의 사고가 배어 있다. 각 시대의 수학을 발전시킨 인간은 다른 분야에도 유사한 사고를 담아낸다. 그렇다고 보면 상이한 분야를 관통하는 동질적인 사고를 발견하는 것은 일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협찬:한국과학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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