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처럼 시커먼 물이 흘렀던 탄천(炭川). 탄천이 그 오명과 운명을 훌쩍 걷어내고 도시를 싱그럽게 하고 있다.탄천은 신갈에서 발원해 분당 신도시, 성남 구시가지를 거쳐 한강으로 이어진다. 1990년대 이후 분당·용인 등의 개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오수와 악취로 도시의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어두운 과거는 이젠 현장에는 없다.
둔치는 각종 체육시설과 자전거도로 등이 들어선 천변공원으로 변했고, 콘크리트로 덮혀 을씨년스러웠던 호안은 돌과 자갈이 깔리면서 수생동식물의 보금자리로 자리하고 있다. 검은 물이 흐르는 '숯내'가 시민들의 자랑거리로 탈바꿈한 것이다.
시민들의 휴식공간 겸 출퇴근로
1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성남 제2종합운동장 앞 탄천변. 머리와 팔목에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날렵하게 인라인스케이트를 지치는 직장인,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 도로를 천천히 선회하는 노부부, "한 게임 더!"를 외치며 농구경기에 몰두하는 학생들로 분주하다.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회전연습을 하던 회사원 김광호(38·야탑동)씨는 95년 입주당시를 잊지 못한다. 창을 열면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찔렀고 콘크리트로 테두리가 둘러쳐지고 죽 뻗기만 한 탄천은 볼썽사나웠다. 김씨는 그러나 요즘 말그대로 상전벽해를 실감하고 있다.
"냄새도 안나고 인라인스케이트장만 5군데나 들어섰을 정도로 천변에 레포츠 시설이 많이 생겼다"는 김씨는 "수서에 있는 직장까지 자전거도로를 따라 출퇴근하는 동료들도 적지않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였다.
'분당 여성회 사이클동호회' 소속이라는 강숙례(61·분당구 수내동)씨는 "중앙공원에서 출발해 천변을 따라 매일 2시간씩 사이클을 타는 것이 최고의 낙" 이라며 "보통 자전거도로를 이용해 양재동 시민의 숲 근처까지 왕복하는 데 길이 조금 울퉁불퉁한 것 빼고는 흠잡을 데가 없다"고 말했다.
탄천 주변의 공원화가 시작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 높아진 주민들의 레포츠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분당구, 수정구, 중원구 등 관련 구청들이 점진적으로 시설을 확충해 나갔다.
현재 탄천변의 체육시설은 모두 18개. 분당구 오리역 인근부터 수정구 태평동까지 농구장(8) 배구장(2) 축구장(1) 야구장(1) 족구장(1) 인라인스케이트장(5)이 즐비하다. 자전거도로(총연장 27.3㎞)와 산책로(22.7㎞)역시 시원스레 뻗어있다. 천변을 따라 연결된 자전거도로를 타면 구미동에서 분당신도시를 지나 성남구시가지와 수서를 거쳐 한강까지 70분대에 주파가 가능하다.
성남시는 7월까지 57억원을 들여 콘크리트로 덮혀 불만을 샀던 자전거도로와 산책로에 탄성바닥재를 깔 계획이다. 백사장도 생긴다. 올여름 만들어질 분당구 야탑동과 중원구 여수동 경계지역(500여평), 수정구 태평동 둔치(650평)에는 두께 70㎝의 고운 모래가 깔리고 비치파라솔과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간이침대, 샤워장, 탈의장 등의 편의시설도 설치된다.
2015년 완벽한 생태형 하천으로
탄천이 첫번째 변화를 겪은 것은 1990∼94년 분당개발 초창기. 이때 자연하천이었던 탄천의 물길이 직선화되고 하폭이 확대되는 등 대대적 정비가 이뤄졌다. 더구나 수지, 구성 등 인근지역의 급작스런 인구증가로 생활하수가 대량으로 흘러들며 탄천은 자생력을 급격히 잃어갔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들은 보에 막혀 한강으로 머리를 돌려야했고 건천인 탄천에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급기야 안양천, 중랑천, 전주천 등 각 지자체의 '생태형 하천화 사업'에 자극받은 성남시는 얼마전부터 탄천을 '생명의 강'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각 구청별로 이뤄지던 탄천관리가 지난해 8월 '시 탄천관리과' 로 일원화되며 생태형 하천화 작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우선 내년 1월까지 시범사업으로 하탑교∼신기교 4.8㎞ 구간의 하천바닥을 정비하고 호안에는 갯버들, 갈대, 부들 등 수생식물을 심을 예정이다. 5군데에 통나무 등으로 인공 여울(물 흐름을 제어하는 시설)을 만들어 유속을 늦추고 보(하천 중간의 소규모 물막이)에는 어도(魚道 ; 보 측면을 터 만든 물고기 길)를 설치해 탄천 전역에 물고기들이 살수 있게 할 계획이다. 시는 2006년말까지는 45억원을 투입, 탄천 대부분 구간(15.8㎞)을 생태형 하천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복안이다.
꽃 테마공원도 운치를 더한다. 야탑교 입구에 팬지, 만수국 등 '1년초 공원'을, 태평동 일대에는 유채꽃, 메밀꽃 등 '야생화공원' 을 조성하고 산책로를 꽃길로 꾸밀 예정이다.
외형적 정비사업이 활기찬데 비해 더딘 수질개선은 시의 고민거리다. 하류인 성남쪽에서 아무리 수질개선에 나선다 해도 상류인 용인쪽의 수질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헛수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용인시와 경계인 구미교 인근의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 평균치가 23.8ppm(등급외)이었던 반면, 수정구 여수대교 인근의 BOD는 6.8ppm(4급수)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시는 수질악화를 막기 위해 한국수자원공사와 계약을 맺고 4월부터 매일 1만2,000톤씩 팔당원수를 상류지역인 동막천에 방류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풍덕천에 건립할 예정인 용인시의 새 하수처리장. 11만톤 규모인 용인의 새 하수처리장이 완공될 2007년이 되면 탄천 수질개선은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성남시 탄천관리과 남봉림과장은 "지금까지 탄천 관리는 홍수예방 정도의 소극적 관리에 불과했다" 며 "생태형 하천복원을 목표로 하는 '탄천종합계획'이 완료되는 2015년이면 탄천은 생명의 하천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탄천은 이제 생태계 寶庫
"탄천이 레포츠족의 놀이터인줄은 알았지만, 생태계의 보고일 줄은 몰랐어요."
7년 전 분당으로 이사 온 유재련(26·분당구 야탑동)씨는 지난해 초여름 새벽 운동길에 탄천에서 갓 태어난 새끼들과 함께 헤엄치는 청둥오리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을 되살렸다. 이후 유심히 탄천을 지켜보던 유씨는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늘어난 붕어와 잉어 등 어류떼로 탄천의 물비늘이 쉴새없이 반짝인다는 걸 알게 됐다.
죽은 하천으로만 인식됐던 탄천의 생태계는 알고 보면 매우 다양하다. 탄천 생태계 전반에 대한 연구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경원대 산업환경연구소가 2000년 8월∼2002년 1월 실시한 분당천, 운중천(탄천의 지천)에 대한 생태조사에서는 1급수에 사는 어류와 천연기념물(황조롱이)까지 발견됐다.
분당천 조사결과에 따르면 어류로는 피라미, 붕어가 가장 많았고 조류는 겨울철새와 여름철새가 두루 발견됐다. 여름철에는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등이 주로 관찰됐고 겨울철새로는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등 오리류가 눈에 띄었다. 특히 흰뺨검둥오리의 개체수는 2∼3년 사이에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식물로는 부들, 갈대, 개구리밥, 미나리 등이 발견됐다. 상류에서는 1급수에 사는 버들치, 참게와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육식성 조류)가 확인됐다. 현재 진행중인 탄천 전 구간에 대한 생태형 하천 복원작업의 성과는 이번 연구결과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인공 모래톱 조성, 직선 수로의 사행(蛇行)화, 둔치 녹화사업 등 생태복원작업을 벌인 결과 하천 생태계의 종이 더욱 다양해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분당천의 경우 1999년만 해도 식물과 어류가 각각 20과50종, 3과6종에 그쳤으나 최근에는 36과93종, 5과11종으로 늘어났다. 조류도 7과12종에서 11과20종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경원대 조경학과 최정권 교수는 "오염이 덜된 지천 상류에서는 훨씬 더 다양한 동식물이 발견됐다"면서 "탄천 전반에 걸쳐 생태조사를 벌인 뒤 장기 적 안목을 갖고 이곳의 생태복원사업에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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