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천정이 갑자기 빙글빙글 도는 듯 느껴졌어요' '마치 회전목마를 탄 듯 핑 돌더니 눈앞이 갑자기 아득해졌어요' '아스팔트 위를 걷는데 스펀지를 밟는듯한 느낌이에요' 이런 증세를 처음 경험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상당히 불쾌하긴 해도, 아마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생각까지는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지럼증이 계속 반복되고, 메스꺼움 두통 구토 증상까지 동반된다면? 놀랍게도 최근 이비인후과를 찾는 환자의 5∼10%는 이러한 어지러움 증세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환자들이다. 전문의들은 남성도 어지럼증을 호소하지만, 그 발생빈도는 여성이 훨씬 높다고 말한다.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이비인후과 질환들을 알아본다.
내이(內耳)에서 돌가루가 빠져나온다?
어지럼증을 가장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양성돌발성 체위성 어지러움'이란 질병 때문이다. 단국대의대 이비인후과 이정구교수가 2003년 10월 대한이비인후과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1.4∼2.6배 정도 많이 발생한다. 질병빈도는 나이가 들수록 높아 50대의 발생빈도가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60대, 40대, 30대, 70대, 20대 순으로 나타났다.
미래이비인후과 박현민 원장은 "양성돌발성 체위성 어지러움은 내이 전정에 들어있는 이석(耳石)이 여러가지 이유로 떨어져나와 반고리관 안에 들어가서 어지럼증을 일으키게 한다"면서 "병명에서 알려주듯 갑작스럽게 발생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악성이 아니라 '양성'으로 환자를 오래 괴롭히지 않고 대개는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말했다. 이 병은 평상시에는 괜찮다가 머리의 회전이나 위치를 바꾸면서, 예를 들면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고개를 돌릴 때,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숙일 때처럼 머리 회전이나 위치에 따라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이석은 정확히 표현하면 칼슘 결정체. 우리 귀(내이)에는 작은 수천∼수만 개의 돌가루, 100분의 1㎜도 안되는 작은 조각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가 여러가지 원인으로 갑자기 이 돌가루가 전정에서 나와 반고리관으로 들어가 어지럼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같은 클리닉 송병호 원장은 "반고리관 안에는 내림프액이란 액체가 들어있어 회전감각을 느끼게 하는데, 돌가루가 들어와 자극을 받게 되면 우리가 동작을 바꿀 때 수초 혹은 일분 가량의 짧은 시간이지만 빙빙 도는 어지러움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했다.
'양성돌발성체위성 어지러움'이 여자에게 많은 이유
왜 땅에 두발 잘 딛고 다니던 사람들이 어지럼증을 느끼게 될까. 의학자들은 가장 흔한 원인은 머리에 큰 충격을 받는 경우라고 주장한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거나, 넘어지거나, 공에 맞는 등 외상 후 이석이 원래 있어야 할 전정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심한 감기에 걸린 후 내이에 바이러스 감염이 돼 올 수 있다. 바이러스가 전정신경의 기능까지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노화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노화로 신체 조직이 느슨해지면서 견고하게 전정에 붙어 있어야 할 이석까지도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여성에게 더 많은 이유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송원장은 "남성보다 움직임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남성들은 이석이 떨어져 나와도 활발한 움직임을 통해 쉽게 이석이 제자리(전정)로 돌아가는 데 여성은 이석이 한번 떨어져 나오면 반고리관 안을 마구 떠돌아 다니게 된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여성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예민한 성품이어서 조그만 어지럼증에도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환자 수가 많다는 진단이다.
어지럼증의 진단과 치료
양성돌발성 체위성 어지러움은 별다른 치료 없이도 80%는 저절로 회복될 수 있다. 아마 어지럼증을 경험한 여성들 중에 병원을 찾지 않았는데도 증상이 저절로 없어진 경험을 가진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박원장은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자세변화를 통해 반고리관 밖으로 결석을 꺼내는 운동법이 큰 효과를 보고 있다"면서 "심하게 어지럼증을 경험하던 환자들도 간단한 치료로 대부분 증상이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치료법이 간단하다고 해서 누구나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석이 어느 부위에 있느냐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일도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어지럼증에 귀까지 먹먹하면 메니에르병 의심
어지럼증과 함께 이명, 귀가 먹먹한 느낌, 청력 감소 등의 증세가 동반되는 병이 있다. 프랑스의사의 이름을 따 명명된 '메니에르' 라는 질환. 1,000명당 2명 정도 발생해 흔한 병은 아니지만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펴낸 교과서에 따르면 메니에르병 역시 여성이 남성보다 1.3배는 환자가 많다고 보고되고 있다. 메니에르병의 어지러움은 갑자기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양쪽 귀 혹은 한쪽 귀에 압박감이나 먹먹한 느낌이 들다 청력손실이나 이명 등이 나타나고, 이어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구토 등 증상이 동반된다. 일부 환자는 어지러움이 심해 쓰러지기도 한다.
메니에르병의 원인 역시 정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내이의 내림프액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생산돼 내림프액 공간(내림프낭) 안에서 압력이 높아져 평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추측하고 있다.
송원장은 "내림프액의 압력을 낮추기 위해 치료법으론 저염식이 권장된다"고 말했다. 또 이뇨제도 흔히 사용된다. 저염식과 약물요법만으로 80∼90%의 환자는 좋아진다.
이런 방법으로도 좋아지지 않을 경우 전정기관의 감각세포 기능을 약화시키기 위해 약물을 중이에 투여하거나 전정신경 절제술을 실시하기도 한다.
편두통 환자 60%가 어지럼증 동반
편두통은 4대1 혹은 5대1 비율로 여성환자가 남성환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질환이다. 송원장은 "보통 편두통의 증상으로 쿡쿡 쑤시거나 깨질듯한 두통만 떠올리지만, 어지럼증이 전조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면서 "일부 환자는 두통은 심하지 않고 어지러움만 반복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편두통 환자는 메니에르병으로 오진되기도 한다. 편두통 환자들의 전정기능을 검사해보면 정상이다.
편두통 환자에게 어지러움이 생기는 이유는 일시적으로 뇌혈관이 수축되면서 내이로 가는 혈류량도 감소, 내이 쪽 기능이 저하되면서 생기게 된다. 편두통 환자에서 어지러움이 동반되는 경우가 60%나 된다.
송원장은 "편두통 환자는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쉬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면서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 등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도 효과적이며, 자주 어지럼증이 동반되는 환자들은 칼슘이온차단제 등을 투여함으로써 어지럼증과 두통을 예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차멀미 뱃멀미로 오는 어지럼증
어지러움과 함께 메스꺼움 구토 두통 등의 증세가 함께 나타나는 멀미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많은 증상이다. 송원장은 "우리 몸은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눈과 귀, 팔다리의 감각을 이용하는데, 우리가 이미 습득한 경험과는 다른 새로운 자극이 들어왔을 때 '감각의 충돌'이 생기면서 멀미증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활동량이 적은 탓인지 평형감각은 떨어지고, 감수성은 예민해 멀미증상을 더 많이 호소한다.
최근 뒤로 향해 앉았던 고속철 이용자들이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한 것도 감각의 불일치로 인한 멀미 증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머리 속에 느끼는 일정한 틀의 감각은 차를 타고 앞으로 가는 것인데, 뒤로 향해 앉을 경우 시각을 통해 얻는 풍경이 반대로 나타남으로써 기존 경험과는 맞지 않은 자극이 들어와 어지럽게 느끼는 것이다. 더구나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은 자꾸 바뀌는데, 귀를 통해 느끼는 속도는 거의 변화가 없어 귀의 전정기관(이석기관과 반고리관)과 시각 감각이 충돌하는 것도 멀미 유발 원인중 하나로 작용한다.
멀미치료의 원리는 비슷한 자극을 반복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극에 무뎌지면서, 더 이상 멀미를 하지 않게 된다. 멀미가 예상될 경우 차나 배를 타기 전 미리 신경안정제 성분이 들어있는 '키미테' 같은 패치를 귀 뒤에 붙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송영주/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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