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프랑수아 플라스 글·그림, 공나리 옮김
솔 발행·전3권
각권 1만1,000∼1만2,000원
문화적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지 않으면서도 오랜 연륜과 경험을 지닌 원시인이 각국을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쓴다면 이런 책이 나올 것 같다. 문학적 비유와 상징이 가득차고 판타지 문학의 요소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이다.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은 이야기 설정부터가 독특하다. '오르배'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상상의 섬. 지도를 만들면서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다고 믿는 그곳 학자들이 세계를 돌며 만들어 놓았다는 지도 이야기다. 시대 배경은 대략 14∼19세기이고 지역은 아프리카에서 중남미, 막막한 사막에서 북극까지이다. 나라는 알파벳A로 시작하는 아마조네스부터 Z모양의 지조틀 나라까지 모두 26개국이다.
이야기에는 주인공의 탐험기나 풍속기 또는 한 사람의 일생을 추적하는 성장기도 있다. 각지의 자연과 지형, 기후와 풍물, 인물들의 모습은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벙어리 악사 유포노스가 아마조네스의 전사를 만나는 '아마조네스의 나라', 붉은 수염 오랑캐의 나라를 원정하고 돌아온 얘기를 다룬 '에스메랄다의 산', 용감한 고래사냥꾼 소년의 모험을 그린 '얼음 나라' 등…모두 동화 같고, 전설 같은 내용들이다.
이 책에서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탁월한 비유다. '…셀 수 없는 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군사들한테 쏟아졌다네. 여전사들의 화살은 굵은 빗줄기가 되어 갑옷으로 무장한 적들의 가슴팍을 후벼 팠어…'('아마조네스의 나라')
그러면서도 신화, 전설, 마술,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을 매개로 효율성과 합리성만을 따지는 서구문명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다리가 보름달처럼 생긴 커다란 탁자들을 끌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검은 금속 막대기에 천둥과 번개를 가두어 두는 법을 알고 있었으나 우리들의 아버지, 옥수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에스메랄다의 산')
그의 이야기들은 곳곳의 풍경과 풍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삽화로 더욱 빛난다. 군사들의 원정대열이나 여전사들의 회의장면 등을 구석구석 세밀하게 그린 그림은 놀랍고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등장인물의 옷차림이나 건축양식을 세밀하게 복원해놓은 솜씨는 각국의 역사와 지리, 문화에 정통한 작가의 지식과 섬세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저자 프랑수와 플라스(47)는 유럽에서 최고로 꼽히는 그림책 작가. 당초 삽화 디자인을 전공해 일러스트레이터로 출발한 그는 이 책을 내면서 당당히 작가로도 인정받았고, 1998년 이탈리아 볼로냐 도서전 라가치상까지 받았다. 전체 6권 중 1차로 3권이 먼저 나왔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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