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가 추진중인 외주전문 지상파 채널 설립에 관한 연구보고서가 29일 나오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문화관광부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의 큰 틀은 지상파를 활용, 보도를 포함한 종합편성의 고품질 문화전문 채널을 설립한다는 것.일각에서는 특히 시사보도 기능까지 포함한 것과 관련, "친 정부적 여론조성을 위한 또 하나의 공영방송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비판이 빗발치자 문화부는 "채널 성격과 편성 등 모든 문제는 향후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할 예정이며, 보도 프로그램은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것이 문화부의 공식입장"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보도기능을 배제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외주채널 설립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구체적인 편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방송시장 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정책이 사회적 논의는 물론, 방송위원회 등 관련부처와의 협의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부는 외주채널 설립이 필요한 이유로 전체 방송광고 시장의 85.7%를 차지하는 지상파 3사의 독과점 구조와 이로 인해 다양하고 품격 높은 문화 관련 프로그램이 설 땅을 잃었다는 점을 든다. 일견 옳다.
그러나 이같은 고질적 병폐가 외주채널을 하나 설립한다고 해결될 수 있을까. 지상파와 케이블·위성방송과의 불균형이라든가, 아직도 가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디지털 방송정책 등 방송계 전반의 숱한 문제들을 아우르는 보다 큰 틀에서의 종합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외주채널 설립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공개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모아나가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문화부가 참고사례로 든 영국의 외주전문채널 '채널4'를 보자. 보고서에서도 언급했듯이 1962년 6월 발간된 '필킹턴 보고서'에서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이후 82년 첫 방송이 나가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우리는 어떤가. 문화부가 이 문제를 공식 언급하는 것은 지난해 4월 청와대 업무보고 때. 당시에도 논란이 일었지만 "아직 아무 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고 얼버무리던 문화부는 이 달 중순 업무보고에서 올 하반기 중 설립추진기구를 구성, 2005년 시험방송에 들어간다는 구체안을 '기습적으로' 내놓았다.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송위원회나 주파수를 관리하는 정보통신부와 공식 협의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문화부의 '주문 생산품'인 연구보고서의 구체적 내용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지나친 단순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고서에 나타난 외주채널의 성격이라든가 재원 구조, 운영 방안 등은 외주전문에 초점이 맞춰진 영국의 '채널4'와 고품격 문화채널로 자리잡은 프랑스의 'ARTE' 사례를 기계적으로 결합해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례로, 보고서는 'ARTE'에 대해 "시청자들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극소수 시청자만 확보하는 데 그쳐, 결국 다수의 돈을 받아 소수를 만족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 대안은 내놓지 못한 채, 외주채널이 시청자 참여 폭을 넓히고 방송영상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포장하고 있다.
문화부가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방송 장악 음모 혹은 방송위의 고유 권한 침해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모든 문제를 원점에서,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논의하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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