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등 정부가 '안풍 자금' 환수조치를 놓고 뒤늦게 고민하게 된 것은 한나라당 당사 매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정부는 2001년 김정길 법무장관 명의로 한나라당을 상대로 94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당사 매각 과정에서 가압류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국고 환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또 지난해 9월 서울지법이 96년 총선과 95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한나라당(당시 신한국당)이 유용한 안풍자금 1,197억원 가운데 최소한 856억원이 안기부에서 나온 돈이라고 판결한 것도 국고 환수 조치의 명분을 제공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기획예산처 등이 국정원에 한나라당 등을 상대로 국고 환수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한나라당 당사 매각 대금 채권 등을 대상으로 가압류 신청을 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또 이미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다소 미진하다고 보고 한나라당과 강삼재 의원,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등 3자를 상대로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정부는 당사 매각 뒤에도 한나라당 국고보조금 등을 상대로 가압류를 신청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정부에 고민이 생겼다. 가압류 신청 시점이 적절하지 않아 자칫하면 '야당 탄압'이란 비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4·15 총선이 끝난 뒤 여야 정치권 모두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외치는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가압류 신청을 밀어붙이는 것도 부담스럽다. 심지어 여당도 "왜 6월 재·보선을 앞두고 시끄러운 일을 벌이느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정부측은 국고 환수 조치를 위한 전제로 안풍 자금은 모두 '안기부 예산'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95∼96년 당시의 안기부 계좌를 추적한 결과 외부에서 유입된 자금은 전혀 없다"며 "안기부 예산의 이자 등으로 발생한 안풍자금은 김기섭 전 차장을 통해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강삼재 의원에게 넘겨진 게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강삼재 의원이 "당시 총선자금을 김영삼 전대통령에게서 받았다"면서 안풍자금을 김 전대통령의 정치자금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다. 때문에 법원이 최종적으로 안풍자금이 안기부예산이라고 판단할 경우 한나라당은 정당 해산 절차를 밟지 않는 한 안풍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정원 등은 한나라당에서 정당 해산을 통한 재창당 주장이 거론되는 배경 중 하나가 정부의 국고환수 조치에 대한 대비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