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들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시장에서 막대한 투자 수익을 올렸지만 세금은 거의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29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외국펀드들이 국내 금융회사를 인수하거나 특정기업 주식을 사들여 수조원대의 차익을 거뒀지만 이중과세 방지협정 등의 보호막에 힘입어 국내에서 내는 세금 부담은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의 조세회피지역에 본사를 둔 미국계 사모펀드 칼라일은 2000년 11월 4,900억원에 사들인 한미은행 지분 36.55%를 이달부터 한미은행의 새 주인인 씨티그룹에 1조1,500억원에 팔기로 해 6,600억원의 차익을 챙기게 될 전망이다. 지분매각에 따른 자본이득뿐 아니라 2002년, 2003년에 배당으로 받은 수입까지 합하면 약 8,000억원 대의 이익을 거뒀다는 것이 금융계의 분석이다.
독일계 보험사인 알리안츠는 최근 하나은행 지분 2.46%(489만주)를 증시에서 주당 2만4,500원에 매각했다. 매각대상은 2000년 3월 주당 8,900원에 산 지분 8.16%(1,420만주)의 일부로, 대금은 약 1,200억원 수준. 최초 매입 당시 투자액(1,263억원)의 대부분을 이번 매각으로 회수한 셈이다. 나머지 지분은 고스란히 차익으로 거둘 수 있게 됐다.
모나코 소속 소버린도 지난해 3∼4월 SK주식 1,902만8,000주를 1,768억원(주당 9,293원)에 사들였으나 최근 주가는 5만원대를 기록하고 있어 1년 사이에 평가차익이 7,700억원을 웃돌고 있다.
그러나 외국 자본의 투자수익에 비해 세금 부담은 미미한 상황이다. 해외에 근거지를 둔 외국자본들은 국내에서 주식거래로 차익을 거둘 경우 거래대금의 0.3% 이하인 거래세와 농어촌특별세 외에 국가별 협정에 따라 10% 안팎에서 할인 적용되는 배당 관련 세금을 부담하는데 그치고 있다. 대규모 차익실현에 따른 양도소득 관련 세금은 국가간 이중과세 방지협정에 따라 외국 자본의 거주국가(본사 소재지)에만 내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등 국내 투자 비중이 높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소속국을 비롯해 전세계 70여개국과 이중과세 방지협정을 맺고 있어 국내 진출한 외국기관투자자 대부분이 세제상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반면 국내 기관투자자의 경우 주식거래 차익에 대한 세금을 직접 내지는 않지만 차익이 클 수록 세전 수익이 많아져 법인세를 통해 간접적인 과세가 이뤄지고 있는 상태.
금융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외자유치 차원에서 맺은 비과세 협약을 세금회피 목적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세회피 의도가 짙은 투기성 자본은 조세감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부작용 방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