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철가방이 눈길을 끌었다. 동네 중국 음식점이다. '공화춘'이라는 가게이름부터 감각이 튀었다. 붉은 글씨가 쓰여 있다. <공화춘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음식을 배달시키면서, 누가 지은 구호인지를 물었다. "우리 사장님이요. 엄청 고민하신 후 지었다는데요." 묻지 않은 것까지 배달원이 들려주는 걸 보니, 그의 마음에도 들었나 보다. 처음에는 뛰어난 기지(機智)에서 나온 문구인 줄 알았더니, 판단력의 소산인가 보다. 몽테뉴는 '기지는 재빠름과 임기응변의 재능이 발휘된 것이고, 판단력은 느림과 침착함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이름이나 구호는 이미지로 직결되는 급행열차다. 때문에 누구나 소중하게 여긴다. 청계천에 놓일 새로운 다리의 이름들이 정해졌다. 21개 중 20개가 확정됐다. 광교와 수표교는 옛 이름을 살리기로 했다. 한글이름에는 '∼다리'를, 지명이나 인명을 딴 한자이름에는 '∼교'를 붙였다. 이를테면 방산시장 앞은 새벽시장의 활기와 향수를 담아 '새벽다리'로 정해졌다. 새벽다리 맑은내다리 배오개다리 나래교 비우당교 마전교 오간수교 고산자교…. 이름에서 온고지신의 예스런 정취와 맑고 고운 어감이 우러난다. 정감과 시심이 절로 느껴지니 얼마나 흐믓한가. 공화춘이>
■ 파리 시내를 흐르는 센강은 강폭이 생각보다 좁다. 청계천이 큰 개울인데 비해, 그래도 센강은 당당한 강이다. 거기에는 30여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 파리 서쪽에 놓인 '미라보 다리'는 동명의 아폴리네르 시로 유명하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 내린다 마음 속 깊이 아로새기리라 기쁨은 언제나 고통 다음에 왔음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앞 부분) 전위예술을 옹호했던 시인의 절창에 의해, 센강과 미라보 다리는 영원히 젊음을 잃지 않는다. 미라보>
■ 청계천이 새롭게 태어나면, 겉늙어 버린 서울도 한결 젊어질 것이다. 아니 거꾸로 600년 고도(古都)답게 고풍스러운 품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되는 점이 있다. 다리이름은 대체로 흡족한 데 비해, 설계도로 보는 교량형태는 많이 우려스럽다. 다리이름은 나름대로의 격식과 문맥을 갖추었는데, 형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건설회사가 다른 탓으로 교량 양식상 전통과 현대가 마구 뒤섞여 있고, 너무 밋밋하거나 지나치게 요란하다. 하나의 개천을 관통하는 건축적 미학은 찾기 어렵다. 다양성도 좋지만, 일년 내내 '다리 박람회장'을 보는 것 같지 않을까 마음이 무겁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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